도요타 자동차가 대규모 리콜(회수 및 무상수리) 발표하면서 품질과 기업 신뢰에 민감한 유럽에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과 생산 중단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지난 28일에는 유럽에서도 최대 180만대의 차량을 리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자동차 그룹인 PSA 푸조 시트로앵은 30일 도요타와 합작 모델을 리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이와 함께 지난 5일부터 프랑스, 영국, 터키, 체코 등의 공장에서는 문제가 발견된 가속 페달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기존 가속 페달을 퇴출시키고 새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 20여 일 후에 리콜을 발표한 것은 유럽 시장에서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도요타의 깊은 우려와 고민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독일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자동차연구소의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소장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도요타의 커뮤니케이션 정책은 재앙 수준으로, 아마 겁을 먹은 것 같다”면서 “향후 6~9개월 간 유럽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독일 자동차판매상협회(ZDK)의 로버트 라데마허 이사는 당분간 도요타 자동차의 신규 고객이 많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라데마허 이사는 “기존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어느 정도 유지하겠지만 새 잠재 고객들은 도요타 매장을 찾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면서 “이번 리콜은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파이리서치 사의 페터 보트뇨크 연구원은 “아무리 큰일이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일회성일 경우 용서를 받을 수도 있지만 향후 수개월, 또는 수년 내에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경우 유럽에서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러나 모건 스탠리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도요타가 이번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회사의 조치가 브랜드 이미지의 결정적 타격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UBS의 필립 후초이스 연구원도 주가가 하락한 도요타와 푸조 주식의 매입을 권고하면서 “그리 큰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좀 더 빨리 생산을 중단하고 리콜을 발표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무대 뒤쪽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이 틀림없다”면서 “도요타가 용감하고 신속하게, 또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난국에 대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도요타의 이번 ’실족’을 고토 탈환의 계기로 삼을 기세이다.
유럽에는 폴크스바겐, 다임러, BMW, PSA 푸조 시트로앵, 피아트 등 세계의 유명 자동차 회사들이 즐비하지만 탄탄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과 한국 자동차 회사들에 점유율을 조금씩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달 17일 브뤼셀 소재 유럽자동차제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시장에서 도요타가 시장점유율 7위로 올라서면서 다임러, BMW가 각각 8, 9위로 밀린 것으로 집계됐다.
또 유럽의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는 1.6% 줄었으나 현대차는 무려 27%, 기아차도 6%의 판매 신장률을 보였다.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은 2008년 1.7%에서 2.4%로 급상승했다.
특히 2018년까지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등극하겠다고 공언한 폴크스바겐 사는 조기 목표 달성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경제위기가 한창 진행됐던 지난해에는 도요타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13% 감소한 781만3천대에 그친 반면 폴크스바겐 그룹은 오히려 1.1% 늘어난 628만대를 판매했다. 이에 따라 폴크스바겐의 시장 점유율은 10.3%에서 11.4%로 1.1%포인트 상승했다.
폴크스바겐의 한스-디터 푀취 재무이사는 지난해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더 빨리 세계 1위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미국 시장에서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목표 달성이 좀 더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폴크스바겐의 세계 1위 등극이 좀 더 일찍 이뤄질 가능성은 더 커진 셈이다.
더구나 폴크스바겐은 최근 자본과 업무 제휴에 합의한 스즈키의 판매량 230만8천대까지 합칠 경우 약 858만8천대로 도요타 그룹을 이미 앞지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BMW, 다임러 등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이번 사태가 매출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는 등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