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년 간 7개의 금융지주회사가 출범할 때마다 금융그룹 차원의 일관된 IT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금융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IT인프라 공동 활용, 공동 마케팅 수행 등 IT 측면에서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금융지주회사들은 그룹 IT체계의 ‘모범답안’을 만들지 못한 상태다.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IT거버넌스 수립의 한계 △데이터 통합의 한계 △정보시스템 통합의 한계 등을 주요 원인으로 제시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금융그룹들이 최적화된 IT전략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여기는 부분은 체계화된 IT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효율적인 IT조직 운영 방안을 마련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는 지적이다. 여러 금융회사의 IT인력이 통합되다 보니 ‘한 회사’라는 이미지에 걸맞은 조직체계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금융계열사와의 명확한 아웃소싱 계약체계도 이뤄지지 않아 서비스를 받는 은행과 IT자회사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일반 IT서비스업체에 비해 최신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은 과거 우리은행 IT아웃소싱을 수주하기 위해 외부 IT서비스업체와 경쟁하는 상황도 맞이해야 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지난해부터 금융사 IT인력을 하나INS로 옮기고 있다. 올해는 하나은행 IT인력이 이동할 예정이다. 은행 IT인력이 본격적으로 이동하게 되면 하나INS의 인력이 큰 폭으로 늘어나게 되고 직급이나 직무상으로 중복되는 인력이 발생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마찰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확고한 그룹 차원의 IT거버넌스 전략을 가져가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신한금융그룹은 앞서 IT조직을 통합한 두 금융그룹과는 다른 체계를 가져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금융계열사의 IT 운용 업무를 모두 IT계열사인 신한데이타시스템에 이관했지만 IT인력은 통합하지 않았다. 신한데이타시스템은 늘어난 업무를 위해 추가로 인력을 채용했고, 각 금융계열사는 줄어든 업무로 인해 일부 IT인력을 현업부서로 재배치했다. 이는 IT조직을 통합한 우리금융이나 하나금융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룹 IT거버넌스 수립의 변수는 그룹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존재하느냐 여부다. 현재 금융그룹 중 공식적으로 그룹 CIO가 있는 곳은 하나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이다. 이 중 하나금융그룹은 그룹 CIO의 적극적인 오너십을 기반으로 그룹 IT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금융이나 신한금융그룹은 강력한 그룹 통합 IT전략을 추진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데이터 통합도 한계다. 국내 법규가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법률이 통과됨에 따라 금융지주 내 금융자회사 간 정보교류를 허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본시장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현재 개정된 금융지주회사법은 지주 내 계열사 간에는 기존의 개인신용정보뿐 아니라 법인 관련 정보도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앞서 시행된 자본시장법에는 △한 회사 내 업종간 △금융투자업자와 계열사간 △은행·보험엄과 집합투자업 등 업종 간 정보교류 차단에 대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 한 금융지주 IT 관계자는 “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됐다 하더라도 계열사인 은행이나 증권사가 각기 따로 규제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데이터 통합을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각 계열사들의 정보시스템 구조는 대부분이 상이하게 구축돼 있다. 대부분의 그룹사들이 인수합병(M&A)으로 계열사를 늘려 오다 보니 IT인프라의 구조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보시스템 노후화에 따른 재구축 작업이 전체적인 그룹 IT아키텍처 기반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계열사별로 이뤄지다 보니 그룹 표준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한 금융그룹은 3∼4년 전 지주회사 차원에서 IT표준화를 시도했다가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포기한 바 있다. 너무나 상이한 정보시스템 구조가 걸림돌이었다.
또다른 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서로 다른 정보시스템 아키텍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 정보시스템을 재구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더욱이 최근 차세대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비용을 집행했기 때문에 더이상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명분도 없다”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