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자대국을 향해] <1부> ‘미래의 유전’ 2차전지를 키우자(4)

 #2030년 서울의 한 가정. 베란다 한 쪽 벽면에 대형 2차전지가 깔끔한 캐비닛 모양으로 서 있다. 낮 동안 지붕에 설치된 태양전지판을 통해 만들어진 전력이 여기로 모였다가, 하루 종일 집 안의 전력원으로 활용된다. 집 안의 조그만 배전소이자 전력 저장소인 셈이다. 전력회사에서 끌어오는 전력을 자동적으로 제어해주기 때문에, 자체 축적한 전력을 최대한 사용해 돈을 지급하고 쓰는 전기량은 최소화할 수 있다. 퇴근한 세대주의 자동차는 밤 동안 여기서 전력을 뽑아, 충전한다. 혹여, 충전시간이 길어져 자동차 배터리 용량을 넘어선 전기는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자동차 뒷 트렁크에 실린 또 다른 대형 2차전지에 축적된다. 이 전기는 다음날 아침 집에서 가까운 충전소에 가서 다시 돈을 받고 팔 수도 있다.

 

 ‘냉장고, 에어컨 없인 살아도 2차전지 없인 생활이 안 된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가정집에도 2차전지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장비가 된다.

 전기를 쓰는 모든 기기의 전력 사용을 시간 단위로 컨트롤하고,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전력을 모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저장장치가 바로 대용량 전력저장장치용(ESS) 2차전지다.

 물론 집에서 쓰는 ESS 2차전지는 발전소, 변전소, 신재생에너지 집적단지 등에 쓰이는 ESS에 비해서는 아주 소형급이다.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른 에너지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전력으로 다시 변환해 꺼내 쓸 수 있는 기술 개발과 2차전지 제품화가 필수적이다.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 대중화 시대에 대형 전력저장용 2차전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를 이용해, 밤과 낮 사이, 계절 간 전력부하 격차를 줄이고, 이로써 전력계통 전체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처럼 평상시에도 전력품질이 좋아, 단전 등의 사태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비중이 높아지고 각 가정의 전력지능화가 가속화될수록 전력 품질을 유지하는 일이 까다로워진다. 이 같은 전력품질 저하를 소비자 단에서 줄이고, 생활단전 등의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안전, 고성능 2차전지가 있어야 한다.

 ◇전기의 패러다임이 바뀐다=지금은 공급자인 KEPCO(한국전력)를 통해 일괄적으로 전력이 공급되고, 수용자인 소비자는 전기제품에 전원을 연결하거나 차단하는 방법으로 전력을 구매하는 단선적인 이용 패턴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비자가 전력을 파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또 집 안에 연결된 각종 전자제품과 설비들이 전력계통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사용자는 그 데이터 정보에 따라 전력을 사용하거나 차단하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2차전지다. 또 가정에 태양전지를 달아, 발전을 해 쓰고 남은 전기는 이 2차전지에 저장해두었다가 전력회사에 되팔 수도 있다. 2차전지가 바로 가정 전력사용을 지능화하고, 경제적으로 쓰게 하는 두뇌이자 심장역할을 하는 셈이다.

 전기차와 전기자전거가 대중화되면 교통 수단에 쓰이는 전기량도 집에서 일상생활에 쓰는 양 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도로의 주요 지점과 지역에는 충전소가 들어서겠지만, 이들 충전소의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집에 주차를 하고, 야간 여유 전력을 이용해 충전을 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저렴할 것이다.

 ◇발전의 다양화, 전력품질 균일화에 필수적=지금은 원자력과 화력이 전기생산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태양전지와 풍력, 조력,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가파르게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원자력과 화력으로 뽑아낸 전기를 기준으로 짜여진 국가 전력계통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기는 안전성과 안정성, 무단절이 절대 생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전지, 풍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력을 모으고, 이를 원자력, 화력에서 생산한 전력과 함께 쓸 수 있도록 품질을 맞추는 데 대용량 2차전지가 필요하다. 즉,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마다 대용량 전지가 필수적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또 전국의 전력서비스 품질을 안정되게 하기 위한 변전소와 주요 전력배전소 등에도 대용량 전지가 있어야 한다.

 이를 기술적으로 밑받침하기 위해서는 고신뢰·저비용·고효율의 2차전지 개발과 함께 고효율·고신뢰 전력변환장치, 시스템 구성 최적화, 전력계통연계 부문의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자기방전이 없고 경제성, 안정성 및 내구성, 환경친화성 및 유지보수 편의성 등의 다양한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기술개발, 앞으로가 진짜 승부=우리나라는 소형 2차전지 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인 고속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대용량 전력저장장치용 2차전지는 소형 2차전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고난도 기술과 재료·소재 개발이 요구된다.

 물론,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전지 선진국들이 한발 앞서 대용량 2차전지 기술개발에 뛰어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2015년 전 세계적으로 156억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용량 전력저장용 2차전지 시장에서 우리가 결정적으로 열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기술 수준이 비슷하고, 아직은 기술적 우열이 확인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용량 2차전지에 관한 기술 개발과 제품 상용화를 서두른다면 미래 거대시장에서 우리 입지를 분명히 확보할 수 있다.

 대용량 2차전지는 앞으로 대용량화, 저비용화라는 기본 방향 아래 고출력 밀도 실현과 빠른 응답속도 등의 기술적 요구를 풀어나가야 한다. 또 유지 보수의 편의성과 친환경 및 고신뢰성을 추구함으로써 사용자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의 단순한 무정전시스템(UPS) 중심에서 부하평준화 및 전력품질안정(순저 보상기능) 기능을 동시에 충족하는 2차전지 개발과 적용 기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단순한 부하평준화 용도로는 경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기능 충족 시스템 개발 보급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전력 사용 특성상 순간 고출력이 가능한 슈퍼커패시터와 대용량 2차전지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의 전지 개발 및 보급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전지, 풍력 등 신재생 분산 전원의 출력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2차전지 개발 및 보급과 직류 배전이나 마이크로 그리드에 적용될 2차전지 기술 개발 및 제품상용화도 필요하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