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가 올해 미국 시장 판매 목표를 작년 대비 15%나 높게 잡은 것은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통해 격변기의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2년 연속 수요가 급감했던 미국 시장은 올해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자동차 수요가 10% 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도요타 리콜 사태로 시장 판도가 급격히 재편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작년 말 조지아 공장을 본격 가동하며 미국 공략에 나선 기아차는 일단 도요타에 등을 돌린 고객들을 흡수하며 상당 부분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요타 사태가 아시아 자동차 메이커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는데다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빅3’의 반격도 만만치않아 점유율을 높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분석이다.
◇올해 미국 시장은?=미국 자동차 시장은 매년 1천만대 이상의 신차가 팔리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시험무대이자 최대 격전장이다. 지난해 중국에 최대 시장 자리를 내줬지만 미국은 여전히 중형,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다양한 차종이 경쟁을 벌이며 전 세계 자동차 판매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 자동차 판매는 2008년에 1천326만대로 전년 대비 18% 줄었고 지난해에는 21% 감소한 1천43만대로 3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주택경기 침체가 진정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오르면서 자동차 수요는 지난해 대비 10% 가량 증가한 1천15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이 같은 수요 회복의 기류는 지난해 하반기 미국 정부가 중고차 폐차 후 고연비 차량 구입시 최고 4천500달러까지 지원해주는 ’저연비차 교체 지원 정책’을 시행하면서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부 정책이 종료되면서 작년 9월에는 판매 대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기도 했으나 12월에는 소비심리가 개선되면서 월 판매대수가 다시 100만대를 넘어서며 올해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빅3에 이어 도요타 추락..늘어난 파이는 누가?=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재도약을 노리는 빅3와 혼란에 빠진 도요타, 그리고 공격적인 시장공략으로 전환한 완성차 업체들로 인해 올해 미국 자동차시장은 위기와 기회가 혼재된 격변의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파산보호를 신청했던 GM과 크라이슬러는 미국 시장 점유율이 각각 19.9%, 8.9%로 전년 대비 2.4%포인트, 2.1%포인트 감소했다. 두 업체는 회생을 위해 군살을 빼고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한번 추락한 기업 이미지는 좀처럼 단번에 만회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빅 3’ 몰락으로 글로벌 톱 자리에 올랐던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 사태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지난 1월 미국 자동차 산업 수요가 전년 대비 6% 상승한 가운데 도요타의 판매대수는 무려 16%나 하락했다. 10%에 달하는 수요 증가, ’빅3’의 공백과 도요타의 추락 속에 늘어난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이 시작됐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공격 경영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요타 수요를 가장 먼저 흡수하게 되는 쪽은 미국 업체들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빅3’는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소형차 위주의 판매 전략을 내세워 한발 앞서 뛰고 있다. ’빅3’ 중 상태가 가장 양호한 포드는 올해 대대적인 합병 및 폐쇄를 통해 딜러망은 줄이돼 피에스타, 포커스 등 소형차를 중심으로 신차를 잇따라 출시해 늘어난 수요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크라이슬러도 소형차에 강점이 있는 피아트와의 제휴를 통해 향후 소형차 라인업 및 경쟁력을 강화하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주력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GM 역시 시보레 크루즈, 시보레 볼트 등 소형차급의 신차를 집중적으로 출시, 크게 늘어난 소형차 수요를 끌어당긴다는 계획이다.
유럽 업체중에서는 폴크스바겐이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 아래 2013년까지 미국시장에서 40만대 이상을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폴크스바겐은 올해 미국 시장에 투아렉, 뉴비틀 등 다양한 신모델을 출시하고 내년에는 신형 중형세단을 현지 생산, 판매키로 했다. 품질 신화가 무너진 도요타는 품질과 안전 분야를 재정비하고 기업의 사회적 활동과 친환경 분야를 강화, 리콜 사태로 입은 상처를 조기에 치료하는데 총력을 쏟을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