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추가 투자요? 돈 냄새 맡은 ‘꾼’들이 정부 근처에 몰리겠군요. 진짜 개발자는 제안서 만들 시간 없습니다.’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아이폰이나 스티브 잡스의 사례가 잘 보여주잖아요.’
‘돈보다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나 제대로 감독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가 지난 4일 소프트웨어(SW) 강국 도약을 위해 향후 3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자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올라온 빗발치는 비판의 목소리들이다.
‘한국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많은 트위터 이용자가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 돌려보기를 하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트위터가 모든 민의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른바 ‘아이폰발 대지진’의 여파가 커지면서 우리나라 IT산업의 현주소를 재점검하고 전략을 보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잘 반영돼 있다.
아이폰 전도사 역할을 맡았던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아이폰이 우리나라의 폐쇄된 IT시장의 구조를 확 바꿔줄 것임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한글SW를 만든 이가 외산 아이폰을 앞장서 전파한다는 비판에 대한 대답이다. 이 대표는 “빗장을 푸는 전초를 만든 만큼 이제는 그 변화의 바람을 열린 IT생태계로 바꿔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열린 IT생태계는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품이 누구에게 뺏기지 않고 시장에서 유통돼 그 가치만큼 대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그렇다면 열린 IT 생태계를 만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수평적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드웨어 기업과 SW 기업이 각각의 역할을 중심으로 서로 평등한 관계 설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SW 강국 도약을 위해서라도 왜곡되고 불투명한 시장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민간 위원인 그는 이 같은 생각을 회의 때마다 역설한다.
이 부분만큼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참모들도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다. 오해석 IT특보는 “중소 SW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적 틀을 보강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입찰에 대기업 간 컨소시엄 구성을 제한하고 중소 SW기업을 우대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 예다. 일부 대기업의 반발도 사고 있지만 정부는 이 같은 방침을 구체화하기 위한 다음 행보를 할 예정이다. 양유석 청와대 방송통신비서관은 “정부 프로젝트에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달청의 조달 규정이나 감사원의 감사 규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부분을 바꿀 수 있도록 관계 부처 및 기관과 후속 대책을 내올 것”이라고 밝혔다.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제치고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면 해당 기업이 살아나고 열린 IT생태계가 마련될 것인가. 이 질문을 받는 기업가들의 십중팔구는 아니라고 답한다. 정부 과제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결코 시장에서 자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유무선 연동 위젯을 개발해 외자 유치에 성공한 정훈 미니게이트 사장은 “정부 과제는 아직 안 해봤다”면서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 결국 소비자에게 먹히는 창의적 제품을 만드는 게 기업이 사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미니게이트를 포함해 G밸리(서울 구로·가산·금천 일대의 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1만여 벤처기업은 영세하지만 대부분 독자적인 제품으로 사활을 걸었다. 정 사장은 G밸리에 기반을 잡은 데 대해 “입주비가 상대적으로 싸고 산업단지 인프라가 잘 조성돼 있어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G밸리는 정부나 지자체의 역할은 창업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조성하고 규제는 최소화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있다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도균 프라이머스 대표도 “지금 자라나고 있고 배우고 있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경험을 나눠주고 이들이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선배들이 할 일”이라면서 “우리나라에도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가 나오려면 창업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가 작은 정부, 실용 정부를 기치로 각 부처를 통합하고 효율성만 강조하면서 정작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속도감 있는 집행이 되기 위해서는 IT전담 부처를 마련하거나 방송통신위원회를 개편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직접 나서서 정부의 크기를 키울 의사는 없다고 딱잘라 말한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