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 경제모델만을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보다 중국·인도 등 이머징 마켓이 더 역동적입니다. 이들 시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러시아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인물인 루벤 바르다니안 트로이카 다이얼로그 투자그룹 이사회 의장(41)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미국 경제에 대한 과다 의존이 오히려 한국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미국이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만큼, 이들의 벤치마킹이 위험하다는 경고로 들렸다.
바르다니안 의장은 러시아·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 강국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제 금융 및 실업 문제, 창의적 중소기업 육성 방안 등에 대해 조언하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드러났지만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나라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그들을 추종했던 나라들도 그대로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그의 대안은 명확했다. ‘신시장’을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미국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미국에서만 배워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미국과 다른 나라의 소비시장은 다릅니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한지 시장 분석이 필요합니다. 문화차이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이 더 국제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 비즈니스 스쿨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중국에는 가지만 러시아에 공부하러 가는 학생은 없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간 경제협력을 고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중국·인도·러시아 3개 신시장의 상호 연관성을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며 “앞으로는 한 국가를 넘어서 더 국제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르다니안 의장의 경고는 이어졌다. 한국에서 실패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중소벤처업계 석학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패자부활(경영재기)’이 떠올랐다.
“늘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는 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어떻게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교육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도층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기업 고위층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한 그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외국 사례를 적극 받아들일 것을 요청했다. 특히 실패를 극복해 성공한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총장으로 있는 대학에서 ‘기업가정신’과 ‘창의성’을 특히 강조한다고 소개한 그는 앞으로는 젊은이들의 창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에서도 모두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것입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팔려고 할 것입니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는 이어 이들을 사회가 흡수할 수 있도록 대학 교육에서 ‘전통 지식’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며 글로벌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과거 정보는 소수가 독점했습니다.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정보 교류가 쉬워졌습니다. 언제나 전 세계와 연결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경쟁도 글로벌화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직장의 개념은 바뀔 것입니다. 창의적 인력을 끌어들이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를 가진 회사가 좋은 직장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이 성장세 지속을 위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리더 자리를 지키기 위한 동기를 계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와 같은 내적 동기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삼성·LG전자 등 한국 대표 IT기업들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바르다니안 의장은 “중국의 향후 5∼10년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라며 중국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창조적 기술과 품질 그리고 비용 절감 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르다니안 의장은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제 체제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러시아·중국 그리고 한국이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이후 전 세계는 새로운 도전과제를 받고 있습니다. 누가 리더로 부상할지의 문제입니다. 과거의 리더가 모범을 보이기는 힘듭니다. 중국은 주도적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국가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을 맡은 것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김준배·한세희기자 joon@etnews.co.kr
<루벤 바르다니안 의장이 보는 이명박 대통령>
‘에너지 넘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인물’
바르다니안 의장이 평가한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통령 국제자문위원으로 총 네 차례 만났다고 한 바르다니안 의장은 “이 대통령은 비전과 미션을 갖고 있으며 한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이 대통령을 본 후 이런 모습이 바뀌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강점으로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꼽았다.
바르다니안 의장은 “개발도상국의 리더로 남의 충고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충고를) 잘 듣습니다. 나쁜 말도 잘 수용합니다. 오히려 충고를 더 요구할 정도”라고 말했다.
<루벤 바르다니안 의장은 누구?>
대한민국 대통령 국제자문위원 루벤 바르다니안은 러시아의 투자은행인 트로이카 다이얼로그 그룹의 이사회 의장 겸 회장이다.
1991년 트로이카 투자은행 창업 때부터 근무했으며 1992년 CEO에 올라 회사를 러시아 최대의 민간 투자은행으로 키워냈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다.
러시아 경제인연합회 기업지배구조위원회 의장과 아메리아뱅크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아브토바즈·카마즈·노바텍 등 주요 기업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글로벌 기준에 맞는 투명한 금융 관행을 실천해 현재 러시아 자본 시장의 중요 인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04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관영 보험회사 로스고스트라크의 CEO로 회사를 회생시키기도 했다.
또 바르다니안 의장은 2006년 러시아의 주요 경제계 인사 및 기업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스콜코보 모스크바 경영대학이라는 MBA 스쿨을 세웠으며 현재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스콜코보 모스크바 경영대학은 경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러시아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실무 교육으로 국내외 예비 경영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르다니안 의장은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모스코바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토리노 CRT은행에서 교육을 받았다. 뉴욕에서 메릴린치 신흥시장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1992),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수학했다. 2008년 포브스 선정 세계 897위 부호기도 하다.
러시아의 국가우선 프로젝트와 연방인구정책을 위한 대통령위원회, 러시아연방정부 산하 경쟁력·경제인비즈니스 국가위원회, 아르메니아 2020 프로젝트 조정위원회,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 국제자문위원회 등 국내외 정부 기관의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