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죽기 살기로 하루에 36홀 매치 플레이를 펼치기도 하는 30년 지기가 있다. 이 친구와 지난해 가을 라운딩을 했다. 오랫동안 골프를 같이 쳤으니 핸디캡이며, 구질이며, 강점·약점을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인 데 그날 따라 드라이브 샷이 낮은 탄도의 훅이 났다. 이 친구의 드라이브 샷 구질은 원래 높은 탄도의 페이드성이었는데 갑자기 낮은 훅이 나타났다.
티샷을 마치고 그의 드라이버를 살펴보고서야 그립을 새로 바꾼 사실을 알았다. 새로 바꾼 그립은 일반적인 그립보다 가늘었다. 대개 그립은 안 지름이 0.6인치, 0.58인치 두 가지 크기가 있다. 그립의 무게도 각각 달라서 50g, 45g, 심지어는 39g도 있다.
이 친구는 바뀐 그립이 전에 쓰던 그립에 비해 가늘었기 때문에 손목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훅성 타구가 나왔고, 그립이 가벼워져서 스윙 웨이트가 변하는 바람에 헤드가 무겁게 느껴져서 본인도 모르게 손목을 뒤집는 타법으로 쳤다고 본다.
0.02인치(0.5㎜)의 두께 차이와 5g 정도의 무게 차이를 느끼는 골퍼는 무의식적으로 스윙에 조정을 가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본적도 없는 낮은 탄도의 훅성 타구가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드라이브 샷에 자신이 없으니 좋은 스코어는 나오지 않았다.
일반적인 아마추어 골퍼들은 그립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3년 동안 그립 한번 갈지 않은 골퍼가 대다수다. 그립이 닳아서 반질반질한데도 신경쓰지 않고 스윙이 잘못됐다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우리나라처럼 온도 변화가 심한 곳에서는 고무로 만들어진 그립이 탄력을 잃기가 쉽다. 그래서 2년에 한번은 그립을 바꿔주는 게 좋다.
이때 주의할 것은 평상시 잘 맞던 클럽이라면 그립도 현재 끼워져 있는 것과 동일한 스펙의 그립으로 교체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립을 교체해 달라고 온 손님을 대충 보고 서랍에 있는 아무 그립이나 꺼내서-심하게 말하자면 마진이 많은 그립을 꺼내서-대충 끼워주는 골프숍은 조심해야 한다.
그립이 가늘어지면 훅이 나기 쉽고, 반대로 굵어지면 슬라이스가 나기 쉽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립을 교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