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최근 이사 수를 잇달아 줄여 최고경영자(CEO)의 권한 강화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은 최근 연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등기 이사진을 감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이번 달로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두 명의 후임으로 이인호 신한은행 고문 1명만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또 4명의 사내이사 가운데 이상훈 사장(사업지원팀장)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9명이던 이사회 구성원이 총 7명으로 줄게 됐다.
2003년만 해도 14명이었던 삼성전자 이사회 구성원이 7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포스코는 지난 26일 주주총회에서 6명이던 사내 상임이사를 5명으로, 9명이던 사외이사를 8명으로 각각 1명씩 줄이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을 의결했다.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명이 물러난 자리에 박한용 포스코 ICT 사장 등 3명만 후임 이사로 임명했고,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출신인 제프리 존스 사외이사의 후임은 뽑지 않았다.
이에 따라 포스코의 전체 이사는 15명에서 13명으로 줄게 됐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2일 공시를 통해 현재 9명인 등기이사(사외이사 5명)를 7명(사외이사 4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사회 구성원을 최고 9명으로 규정했던 정관을 7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주총에 올릴 예정이다.
SK에너지는 지난 12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재환, 최혁, 김영주 이사를 새로운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임기가 만료된 한인구 이사를 재선임했다. 현 사외이사인 조순, 남대우, 오세종, 김태유 이사 등 4명이 임기를 마치게 돼, 전체 사외이사 숫자는 기존 6명에서 5명으로 줄게 된다.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3명을 둬온 현대종합상사는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다음 달 5일로 끝나지만, 2명만 새로 선임하기로 했다. 전체 이사 수가 5명에서 4명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기업들은 이처럼 이사 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 “사외이사로 쓸 만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거나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서”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해는 적임자를 찾기 어려워 사외이사를 1명만 추천하다 보니 이사회 절반을 사외이사로 하는 규정 때문에 사내이사도 1명 줄어든 것”이라며 “이사회 구성원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며 7명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LG디스플레이와 포스코는 각각 “효율적인 이사회 운영을 위해”라고, SK에너지는 “이사 임기 만료 시점을 다양화하고자 올해 1명을 줄인 것”이라고 감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사 감축이 CEO들의 ‘친정체제’ 구축과 연관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와 포스코, LG디스플레이 등이 이사 수를 줄인 배경에는 지난해 훌륭한 실적을 바탕으로 CEO의 입김이 커진 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이사진이 일괄 사퇴한 포스코는 사실상 정 회장 중심으로 그룹 체제를 재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이윤우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면서 올해부터 단독 CEO를 맡은 최지성 사장을 이재용 부사장이 보좌하는 투톱 체제를 꾸렸고, LG디스플레이도 권영수 사장이 그룹 오너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유임됐다.
이처럼 주로 강력한 CEO들이 있는 회사를 중심으로 이사가 줄어든 것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이사진을 줄여 빠른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효율성은 높아지겠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