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 덕분에 겨울이 없는 하와이에서도 눈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때마다 기분이 우쭐했다.
한국팀이 5위권에서 선두다툼을 벌이던 지난 2월 11일, 미국 TV뉴스를 보는데 5위까지 순위에서 ‘South Korea’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선 5위인데, 미국에선 6위로 떨어지는 ‘희한한’ 이유를 찾아보니 미국과 캐나다는 총 메달 수로, 한국과 중국 프랑스 등은 금메달 수로 순위를 따진다고 한다.
순위 선정기준을 놓고 벌이는 인터넷 토론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은 1등만 인정해주는 사회’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값진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도 기쁨은 커녕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경기에는 1등이 있고, 그 1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금메달을 수여한다. 모든 선수들은 최고가 되려고 피나는 훈련을 견디며 이 때문에 실력이 향상된다. 1등에게 박수를 쳐주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러나 한 사회는 금메달을 딴 선수들만 기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1등만 우대하는 사회일수록 1등을 고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가 ‘서울대 공화국’으로 빗대어 불리는 이유는 1등을 고착하려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명문대학이 있고 그 때문에 나라의 자부심도 있지만, 명문대학만 챙길 경우 그 명문대 출신들이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기위해 자신의 출신대학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조직할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성골들이, 고려의 귀족들이,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랬지 않았는가.
‘1등만 기억하는 사회’의 대안을 내놓는 것은 간단치 않다. 1등도 챙기고 꼴찌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최고가 되려는 사람을 격려하면서도 소수의 의미 있는 목소리도 빼놓지 않는 시스템은 없을까.
미래학자들은 양자역학의 확률이론을 적용해 양자의 정치(Quantum politics)를 펼쳐볼 것을 권한다.
한 사회에 A당, B당, C당이 있다고 치자. A당은 다수당으로 4명의 국회의원을, B당은 2명, C당은 1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하고 있다. 다수결로 법안을 처리할 경우, 매번 A당이 유리하다. 이를 1등만 우대하는 사회라고 부르자. 이번엔 확률로 법안을 처리하는 방법을 적용해보자. 속이 보이지 않는 주머니에 A당, B당, C당을 나타내는 공을 집어넣되 의석수대로 A당은 4개, B당은 2개, C당은 1개의 공을 넣는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나온 공을 대표하는 당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다수당은 당첨될 확률이 높고, 소수당도 뽑힐 확률은 있으므로, 1등과 꼴찌를 모두 배려하게 된다. 이런 의견에 코웃음을 친다면, 18세기 뉴턴역학에 머물러 있는 사회의 운영원리를 진화시킬 방법은 요원하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