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대융합
이인식외 38인 지음. 고즈윈 펴냄.
20세기 세상을 지배한 미국. 미국의 주류 사회를 또한 지배하고 있는 유대 민족. 민족성만큼이나 강인하고 독특한 교육 철학을 지닌 유대인들은 옛부터 전통 도서관 ‘예시바’에 칸막이를 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서로 토론할 수 있는 개방형 책상만이 있을 뿐이다. 학생들은 타인의 생각과 융합시킨 새로운 지식과 견해로 재무장하고 자신을 더욱 발전시킨다. 골방에 틀어박혀 과거 공부에 열중하거나 지금도 높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서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하는 우리네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혁신 이론가로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교수는 “현존 기술과 연속선상에 존재하지 않는 융합 기술이 정보사회의 이후를 책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비슷한 맥락에서 “지식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칸막이식 영역 구분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국가 간 관계와 정부 및 기업 조직, 교육 시스템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바로 21세기 ‘기술 융합’의 시대를 예견한 통찰이다.
영역을 넘나드는 기술 융합은 미래의 성장 동력이자, 사회·문화·경제산업 전반에 걸쳐 글로벌 지도를 다시 그려가는 큰 흐름이다. 21세기 초입인 지난 2001년 미국이 ‘인간 활동의 향상을 위한 기술의 융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종합적인 융합 기술 개발 체제의 밑그림을 그린 뒤, 주요 선진국들이 국가적 과제로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미래 융합 기술 시대의 패권을 쥐겠다는 뜻이다.
이 책은 과학기술·인문사회·정책 등 각계 최고의 전문가 39인이 융합 기술의 현주소와 발전 추세를 정리한 국내 최초의 개론서다. IT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나라가 미래 백년대계를 제대로 그려가기 위해 융합 기술의 모든 것을 집대성했다. 4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말해주듯, 융합 기술의 개괄적 소개에서 IT·BT·NT·ST(우주기술)·GT(녹색기술)·CT(문화기술) 융합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했다. 책 후반부로 가면 융합 기술과 경제, 인문사회, 윤리의 관련성도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읽었다는 ‘2025년 세계적 추세’ 보고서를 요약 정리한 ‘미국을 먹여 살릴 6대 기술’ 편(부록)은 이 책의 마지막 묘미다. 1만98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