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났다. 화폐개혁을 주도한 박남기 로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해임되고, 김영일 내각총리가 ‘졸속한 화폐개혁으로 인해 인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공식 사과 했다. 당 중앙위원회 중앙당 경제정책검열부는 전국의 모든 시장을 종전대로 열게 했다.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북한 내 만성화 된 자본가 세력 단속을 위해 시행된 북한 화폐개혁이 실패한 것이다. 이는 이미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북한 사회가 더 이상 계획경제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즉, 북한사회는 이미 더 이상 시장 없이는 자생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화폐개혁 소식과 주민들의 불만, 물가폭등과 대량 아사자 발생, 화폐개혁 실패 자인 등 북한 내 상황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남한을 포함해 대내외로 전해진 것이다. 북한 당국도 내부 정세가 너무 빨리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것에 대해 당혹한 모습을 보였다.
일례로, 지난 2월 8일 이례적으로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연합성명을 통해 ‘불순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한 보복성전’을 강조하며 북한 내부 소식의 대외 유출을 단속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는 휴대전화 감지기를 이용해 북한 주민의 외부통화를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소식이 실시간으로 외부에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을 더 이상 철의 장막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북한의 변화는 정보화가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은 시장경제 실험을 시작한 2002년 보다 훨씬 이전인 1999년부터 정보화 조치를 시행했다. 김정일 체제 수립 이후 ‘강성대국 건설’을 표방하며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정보화 역할을 강조했고, 이후 정보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특히,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 이후 중단된
휴대전화 서비스가 지난 2008년 12월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 텔레콤이 3G 방식의 휴대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입자가 1년 만에 10만 명을 넘을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공식 루트 외에도 중국을 통한 휴대전화 보급 역시 가파르게 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은 2000년 이후 침체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정보화와 부분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다시 과거 계획경제와 통제경제로 돌아가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는 북한체제가 시장경제와 정보화에 이미 익숙해져 있고, 또한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 변화의 주요 원인은 시장과 함께 정보화다. 북한에서 시장은 이미 활발한 물자교환의 장 역할을 하고 있고, 정보화는 북·중 무역을 활성화 시켜 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다행인 것은 북한 당국이 아직은 시장 보다 정보화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하다는 것이다. 정보화를 북한 경제회생의 중요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한 실제 경제회생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대내외 정보를 철저히 단속하고 있지만, 이미 북한사회의 정보화는 휴대폰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인터넷에서도 그럴 것이다.
박문우 한국정보화진흥원 책임연구원·북한학 박사 parkmunwo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