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사들의 마케팅 비용 비중을 매출액 대비 20%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 대신 이 자금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전환토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5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KT와 SK텔레콤, 통합LG텔레콤 등 각 통신사 CEO들을 불러 논의한 내용의 골자다. 그러나 간담회 직후 통신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마케팅비라는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인 범위에 20%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것을 놓고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업계는 방통위의 조치 배경이 과당 경쟁 방지에 초점에 맞춰진 만큼, 문제가 되고 있는 단말기 보조금 또는 판촉용 지급현금 등으로 대상 범위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포괄적 마케팅비 규제, 실효성 의문=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마케팅비 절감을 강조한 방통위의 압박은 그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규제 대상자인 통신사업자들 조차도 그 실효성과 목적에는 회의적이다.
20% 제한 조치를 어긴다고 해서 정부가 뚜렷한 제재 수단이 없는 데다, 규제 범위를 ‘마케팅비’로 광범위하게 책정함으로써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산간을 다 태우는 격’이 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기업 고유 영역인 마케팅 전략의 실종까지도 우려된다.
정부가 ‘마케팅비 규제’라는 칼을 빼든 것은 과도한 단말기보조금 경쟁으로 인한 사업자간 과열 경쟁을 막아, 이를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지에서다. 번호이동 등을 통해 사업자를 옮겨다니는 소비행태를 개선함으로써 사업자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자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제한 범위를 마케팅비로 일반화하면서, 기존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변형돼 버렸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이후 기업 마케팅비용이 급증한 배경은 사업자간 번호 이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개선해야 하는데, 이번 조치대로라면 통신사업자들이 제한된 20%의 마케팅 비를 당장 효과가 나오는 신규 고객 유치에 쏟아 붓는 왜곡된 마케팅 행태를 취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방통위, 통신사업자 동상이몽=방통위·통신CEO 간담회장에서는 정부와 사업자 모두가 통신시장의 건전한 경쟁환경 조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최시중 위원장은 “협약(과열경쟁방지)을 깨는 것은 벌칙이 없기 때문”이라며 “임기가 남아있는 동안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통신CEO들은 불법 마케팅 적발시 ‘해당사 CEO 강제 퇴출’이라는 초강력 수단까지 동원하자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방통위는 마케팅 전반에 대한 규제를 놓고 이야기한 반면, 통신 CEO들은 지난 13년 고질적 문제인 보조금에 초점이 맞춰졌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부와 사업자간 접근방식이 다른 셈이다.
사업자들은 방통위가 말하는 ‘마케팅비’라는 게 그 폭이 매우 넓고 모호해 규제의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마케팅비를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라면, 업체들은 보조금 경쟁과 판촉 현금지급을 지속하면서도, 얼마든지 회계상으로는 마케팅비를 줄 일수 있어 실효성있는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심규호·류경동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