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블랙박스라 할 수 있는 전자식 기록장치(EDR)가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다.
가속페달 이상을 일으킨 도요타 자동차의 블랙박스에 담긴 주행기록을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도요다 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업계도 유사한 블랙박스 장치를 고급 승용차에 적용해 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사고 발생시 운전자가 블랙박스 주행기록을 공개하라고 자동차업체에 요구할 경우, 국내서도 유사한 논란이 재현될 전망이다.
지난주 도요타는 이벤트 데이터 기록장치(EDR)라 불리는 차량용 블랙박스의 판독SW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DR는 자동차 운행 도중 브레이크나 가속 장치, 연료조절판, 엔진속도 등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그 현상과 발생 시간을 저장한다. 도요타, GM 등 자동차업체들은 전자제어식 엔진의 성능 개선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자 2000년대부터 EDR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EDR의 주행기록은 오로지 자동차 제작사만이 접근할 수 있게 암호장치를 걸었고, 운전자에겐 EDR이 장착됐다는 사실 조차 함구했다. 예를 들어 차량 이상으로 급발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동차 회사는 EDR의 주행 기록을 비밀리에 분석해 문제파악이 가능하지만 피해를 입은 운전자는 차량의 전자적 결함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도요타는 사건현장에서 회수한 EDR의 주행정보가 공개될 경우 법정소송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우려해 판독SW를 미국 측에 안넘기려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또한 도요타는 해당 EDR장치가 시험단계의 견본품이며 관련기록을 이용한 사고의 재구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EDR의 주행기록 공개가 제도화되면 완성차 업계는 커다란 경영 리스크를 안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EDR로 자동차의 기계적 결함이 확인되면 막대한 규모의 피해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도 EDR을 장착한 신차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어 EDR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도 확대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동차 전문가는 “국산차는 2∼3년전부터 그랜저, 에쿠스급 차량에 EDR을 장착해 온 것으로 안다”면서 “자동차 업체로선 EDR 정보 공개는 고양이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는 EDR 장착 차종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 이렇다할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배효수 한국전기차협회 사무국장은 “자동차의 전자부품이 늘어남에 따라 EDR 장착과 정보공개는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면서 “도요타 사태를 교훈삼아 한국 자동차업계도 EDR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