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는 연결기준 매출 136조원, 영업이익 약 10조원을 달성하며 독일 지멘스와 미국 휴렛패커드를 제치고 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등극했다. 지난해 반도체, LCD,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부문 등에서 모두 역대 최대의 매출과 조단위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지난 2000년 시가총액에서 소니를 처음 추월한지 꼭 10년 만이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쉼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꾸준하게 추진해 온 혁신 활동이 자리잡고 있다.있었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1993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신경영체제 선포로 볼 수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는 ‘신경영’ 메시지로 시작된 삼성전자의 프로세스혁신 활동은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90년대 100위권 밖이었던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10년 만에 세계 19위 수준(인터브랜드 발표)으로 높였다.
신경영 체제를 선포한 해 삼성전자는 전사 차원의 프로세스 개선과 SAP R/3 패키지 기반의 전사적자원관리(ERP) 도입을 추진했다. 기존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재설계하는 한편 국내 및 해외 총 80여개 지역에 재무·물류 부문 ERP 시스템을 구축했다. 삼성전자는 1994년도부터 제조, 구매, 자재, 판매 등 모듈을 구축하고 1996년 이후 ERP를 본격 가동, 약 3년간의 안정화를 거치게 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초창기 ERP를 도입한 후 자체 개발을 거쳐 효과를 도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9년경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1995년 이후 재무구조 악화로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는 1997년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30% 이상의 인력을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이때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경영혁신 활동을 본격적으로 가속화하기 시작한다.
1998년 삼성전자는 전사에 걸쳐 주단위 생산확정 체제로 전환을 시도하는 등 제품의 경쟁력에 ‘속도’를 추기하기 위한 프로세스 혁신과 디지털 경영을 본격화한다. 개발관리, 공급관리, 고객관리, 경영관리 등 4대 메가 프로세스와 마케팅, 개발, 구매, 제조, 서비스, 지원, 물류 등 7대 단위 프로세스를 연계한 전사 혁신활동을 본격화하고, 제품별 책임경영 방식인 GBM(Global Business Manager) 체제로 조직체계를 전환하기도 했다.
IT인프라 측면에서는 삼성전자가 i2테크놀로지(현재 JDA에 인수) 리듬(Rhythm) 패키지에 기반한 선진계획스케줄링(APS)과 각종 제품개발관리(PDM) 시스템 등을 잇달아 도입하며 IT를 활용한 경영혁신을 가속화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또 이 시스템들과 ERP간의 연계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 시스템 통합도 추진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업계에서 생소했던 ERP, SCM 패키지를 남들보다 한참 먼저 도입하면서 글로벌 프로세스를 표준화하고, 조직 곳곳에 이를 체화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한 것이 현재의 삼성전자의 프로세스 경쟁력을 낳은 원동력이 된 셈이다. 특히 일부 혁신 프로젝트들은 실패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여러차례 겪었지만 삼성전자는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런 노력을 거쳐 탄생한 시스템과 룰 기반 혁신 체제는 1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정보를 손금 보듯 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삼성전자의 디지털 글로벌 경영체제로 거듭난 것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CEO가 된 2000년초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에서 소니를 앞서기 시작했다. 당시 윤 전 부회장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공급망관리(SCM)’ 혁신을 강조하며, 현재 소니와 파나소닉 등 많은 일본기업들이 삼성전자와의 근본적인 격차로 인정하고 있는 SCM 혁신에 속도를 낸다.
IT를 접목해 글로벌 법인 정보를 통제하면서 계획을 수립하고 글로벌 동시 수요관리와 주 단위 수요변동 관리를 비롯해 재고 관리를 세분화하면서 속도 경영에 나선다. 또 업무 매뉴얼(GPPM)과 체크리스트를 통해 일하는 방식을 시스템화하고 룰과 시스템에 의한 관리 체계를 구축하면서 7대 프로세스 전 부문에 6시그마를 접목하고 GBM별 전략 수립에 적극 나선다. 1993년 이건희 전 회장의 독일 신경영 선언이 10년이 된 2003년 삼성전자의 재고회전일수는 30일로 줄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본사 기준으로 재고회전일수는 약 60일에 달했다. 또 계획수립 리드타임도 같은 기간동안 3주에서 1주로 대폭 줄었다.
이듬해인 2004년 11조7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삼성전자의 당시 시가총액은 이미 소니의 3배 수준에 달했다. 2005년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 평가액은 149억달러 수준으로 시가총액에 이어 브랜드가치 평가액에서도 소니(107억달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하지만 2004년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를 차지한 것은 반도체 부문이었다. 디지털미디어부문과 가전부문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글로벌 경쟁력도 반도체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의 LCD TV는 4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지난해 TV사업에서만 삼성전자는 2조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006년 이래 14분기 연속 세계 평판TV 시장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이 역성장한 가운데에서도 삼성전자는 6880만대를 판매, 분기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경쟁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판매량이 무려 전년 대비 16%나 늘어났고, 영업이익률도 두 자릿수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TV 부문 SCM 혁신을 이끌며 세계 1위 신화를 쓴 최지성 사장이 2007년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수요예측 조직을 대폭 확대하고 주 단위 계획 체제를 안착시키는 등 SCM 프로세스 혁신을 더욱 가속화한 것이 큰 힘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이 38.6%에서 36.4%로 떨어진 가운데 삼성전자는 3%p 이상 점유율을 늘리면서 노키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 반도체를 중심으로 꽃을 피운 혁신 활동의 성과가 이후 정보통신 부문, 가전 부문으로 확산되면서 삼성전자의 ‘제품경쟁력+속도 경영’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SCM 시스템을 본격 구축하면서 주 단위 계획수립 체계와 일 단위 생산, 판매, 재고 등 현황 집계를 통해 90% 이상의 적기납품(OTD) 준수율을 자랑해온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의 속도 경영이 이를 뒷받침한 것이다. 이를 두고 2008년 미국 비즈니스위크지는 ‘삼성이 TV 시장에서 소니를 이긴 이유는 SCM 경쟁력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주문생산(MTO) 방식을 통해 속도 중심의 무재고 SCM 혁신을 구사했지만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델과 달리, 삼성전자는 제품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속도 경영을 가속화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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