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불량? `누수잡는 내시경`에 맡기세요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직원이 자체 제작한 내시경 관으로 드럼세탁기 내부를 검사하고 있다.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직원이 자체 제작한 내시경 관으로 드럼세탁기 내부를 검사하고 있다.

병원에서 주로 쓰는 내시경을 사용하는 가전 공장이 있을까. 황당한 질문같지만 정답은 “예스”다. 병원에서 몸속 내부나 장기를 보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용 의료기구가 버젓이 있는 공장이 실제로 존재한다. 다소 미스테리한 현장은 바로 LG전자 가전 생산라인이 밀집한 창원 공장이다.

창원 공장이 직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로 제조 현장 곳곳을 뜯어 고쳐 눈길을 끌고 있다. 대표 혁신 사례가 세탁기 검사 라인에 설치된 ‘누수잡는 내시경’. 물이 새는 현상은 드럼세탁기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 때문에 작업자는 좁은 검사 라인에서 일일이 손전등을 이용해 세탁기 곳곳을 훑었다. 그러나 워낙 좁은 내부를 살펴 검사도 쉽지 않을 뿐 더러 오류도 많았다.

이 때 제안으로 올라온 게 바로 내시경이었다. 황당한 아이디어였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내시경으로 세탁기 안쪽까지 구석구석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문제는 비용이었다. 당시 의료용 내시경 대당 가격이 700만원. 5대만 설치해도 300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다시 아이디어를 공모해 대당 가격이 절반 이하인 자동차용 내시경으로 교체하면서 작업 능률은 물론 회사 비용을 절감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올렸다.

‘SPS(Set Part Supply)’ 방식도 현장에서 올린 혁신 사례다. SPS는 제품별로 필요한 부품을 박스 하나로 묶어 작업자 앞까지 공급해 준다. 작업자는 이전까지 수시로 바뀌는 모델에 맞는 부품을 챙기기 위해 불필요한 수고를 들였다. SPS는 완제품과 부품을 1대1 방식으로 공급해 불편함을 개선했다.

LG전자 창원 공장은 직원들의 개선 아이디어는 ‘노란 은행잎’ 제도로 압축된다. 창원 공장에서 쉴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의 한쪽 벽면에는 개선 아이디어를 적는 ‘노란 포스트 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공장 직원들은 수시로 불편 사항과 낭비 요소가 있으면 곳곳에 놓여 있는 포스트 잇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적어 이름 옆에 부착하면 그만이다. 이후 혁신 전담팀이 이를 일일이 수거해 분석하고 바로 실행으로 옮겨진다. 이 회사 전경재 부장은 “작업자가 편해야 생산 효율이 높다는 현장 중심의 철학이 생산 혁신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