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토종’ 과학자들이 유학파에 뒤지지 않는 국제적 연구 실력을 검증받으면서 국내 대학의 연구개발(R&D)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다. 과거 해외 유학 이력이 교수 임용에 필수적인 ‘스펙’이었던 것과 달리 서울대·KAIST·포스텍 등 국내 대학에서 실력을 쌓은 석·박사 졸업생들이 다시 국내 대학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선순환 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사장 박찬모)이 선정, 발표한 ‘제 12회 한국과학상’과 ‘제 13회 젊은과학자상’수상자들이 이러한 변화를 입증했다.
◇‘젊은과학자’4명 중 3명 토종파=지난 97년부터 만 40세 미만의 젊은 과학자를 발굴 포상하는 ‘젊은과학자상’ 수상자 4명 중 3명이 KAIST와 서울대 등 국내 대학에서만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수상자 중 이처럼 많은 인원이 ‘토종파’인 것은 이례적이다.
젊은과학자로 선정된 조광현 KAIST 교수는 “KAIST 전자공학과에서 학위를 모두 마쳤지만 유학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특히 전자공학이나 IT 분야에서는 국내 대학들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국 유수 대학 못지 않게 학문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했다.
◇순수 국내 기술 높은 점수=중견급 연구자들에게 돌아가는 ‘한국과학자’의 경우도 이번 심사에서 순수 국내 기술과 인력으로 진행된 연구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언스·셀 등 같은 유명 학술지 게재 논문이라도 해외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연구 성과물보다는 순수 국내 연구진들이 이룩한 업적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한국과학자상 수상자인 이용희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에 비유학파 연구자들이 수상자로 다수 선정된 데는 이 같은 배경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며 “국내 우수 대학들이 토종파 인재들을 교수로 채용하는 사례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올해 PM 등 선진 제도 안착 관건=이러한 성과에 대해 수상자들은 최근 국가 R&D 예산의 점진적 증가로 연구비가 늘어나는 등 연구 환경이 개선되면서 굳이 해외 유학을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학자상 수상자인 오우택 서울대 약학과 교수는 “22년 전 대학교수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연간 연구비가 200만원에 불과했고 해외 학술지에 논문 한 편 내는 것이 꿈이었다”며 “당시에 비하면 연구비나 연구실 규모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우수한 국내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국내에서 연구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올해 연구재단이 첫 시행하는 연구사업관리전문가(PM) 제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절대적인 우수 인재 풀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젊은과학자 수상자인 서갑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부교수는 “올해는 PM 제도가 처음 실시되는 매우 중요한 해”라며 “미국, 일본에 비해 아직까지 절대적으로 부족한 토종파 인력을 늘리는 것도 앞으로 노력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