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용색인(SCI, Science Citation Index)’ 또는 같은 급의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우리나라 대학교수의 업적 평가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평가 잣대다. 대학간의 순위를 매길때도 대학별 SCI급 논문 발표 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승진 기준에 ‘SCI급 논문 발표 몇 편 이상’을 규정해 놓은 대학도 부지기수다. 일부 지방 국립 대학교는 ‘SCI급 논문 1편=인센티브 1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SCI급 논문 기준의 업적 평가가 낳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다. 교수들이 연구 성과를 목표로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 SCI급 저널 등재만을 위해 논문을 출고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논문의 질은 담보되지 않은 채 양만 늘어나는 상황도 발생한다. 우리나라 SCI 논문 발표량은 세계 12위지만 논문의 질을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피인용 지수는 30위권으로 쳐져있다. 또 아무리 학생을 잘 가르치거나 뛰어난 성과로 관련 산업에 기여해도 합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심지어 SCI급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한 이른바 ‘논문 쪼개기(한 편의 논문에 포함될 내용을 여러 편의 논문으로 나눠 발표하는 행태)’도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겉보기만 균형있는 업적평가=교수의 본분은 연구와 교육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학들도 교수 업적 평가 비중을 연구 40%·교육 40%·사회봉사20% 정도로 균형있게 잡고 있다. 하지만 교수들은 SCI 논문에만 매달린다.
대부분 교육 업적평가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이뤄져 수업 시수 미달 등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사회봉사도 ‘남들이 하는 만큼’ 적당히 하면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연구 업적평가는 철저히 발표한 논문 수에 따라 이뤄진다. 그 중에서도 SCI급 논문은 최고 배점이다. 겉으론 균형있어 보이는 업적평가 구조가 SCI 논문 발표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돼있는 것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실제 교육이나 사회봉사 부문의 배점을 감안하면 교수 업적평가는 연구 80%·교육10%·사회봉사10% 비중으로 이뤄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SCI급 논문이 훌륭한 연구성과?=SCI급 논문이 반드시 ‘훌륭한 연구 성과’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연구 성과의 우수성은 분야마다 다른 관점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초연구나 사회과학 분야는 연구 결과물 도출 자체로 큰 의미가 있지만 응용학문 분야에선 실제 산업계와 연계되지 않는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SCI급 저널 등재를 반드시 가장 훌륭한 연구성과로 평가하는 획일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연구 분야에 맞는 다양한 평가지표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한국연구재단이 국가 R&D 과제의 산업화를 유도하는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교수에게 더 중요한 건 연구비보다 대학 내의 ‘업적 평가’이기 때문에 결국 대학의 평가 지표가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연구처장은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SCI 기준에 경도돼 있다”며 “스코푸스(SCOPUS) 등 다른 학술인용 DB도 인정하고 교수 업적평가에 저서 집필이나 강연활동, 기술이전 등이 실질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