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한국의 전자정부를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라구치 카즈히로 일본 총무성 대신(장관)은 22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강병규 행정안전부 차관 등과 잇따라 회동을 갖고 “한국 전자정부 최고 책임자와의 면담을 통해 전자정부에 대한 큰 그림을 알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하라구치 장관은 최시중위원장과 4년 8개월동안 중단됐던 한중일 통신장관회의 재개를 공식확정했다. 한중일 통신장관회의를 이르면 올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ASEAN+3 TELMIN에서 재개된다.
일본 총무성은 우리나라 행안부처럼 행정부 역할을 하면서 전자정부도 총괄하는 정부부처다. 정보기술(IT) 관련 정책도 수립한다. 총무성의 행정체계는 한 때 우리가 베끼다시피한 벤치마킹 1호였다. 그런 총무성이 오히려 한국을 배우러 온 속사정은 무엇일까.
◇“한국을 배우자” 강행군=하라구치 대신은 지난 21일 방한해 곧바로 양평 보릿고개 정보화마을 현장을 견학했다. 22일에는 방통위·행안부 방문에 이어 지역정보개발원, 강남구청, 삼성SDS 등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1박2일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의 전자정부와 IT 현장을 직접 느끼기 위해 강행군을 마다했다.
하라구치 대신은 지역정보개발원에서 자치단체 행정정보시스템을 꼼꼼히 살펴 보는가 하면 강남구청을 직접 방문해 실제 운영 모습까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삼성SDS를 찾아 ‘나라장터’ ‘새올시스템’ 등 한국 IT기업의 정보시스템 개발환경도 둘러봤다. 이번 방문에는 국장급 공무원 10명, NHK·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기자단도 동행해 한국 전자정부에 대한 일본의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日 IT로 행정혁신 ‘발등의 불’=일본 현지에서도 한국 전자정부와 IT 배우기 열풍은 뜨겁다. 도쿄TV 등 유력방송이 잇따라 한국의 IT산업을 조명하는 기획물을 방영할 정도다. 총무성 대신까지 직접 방문한 것은 이 같은 일본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는 표면적으로 UN 전자정부 평가 1위를 한 한국를 배우자는 명분이 내걸렸다.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다르다. 민주당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하면서 행정개혁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재 연간 12조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복지부문 예산증액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때문에 다른 부문의 예산삭감이 불가피한데 이를 위해서는 전자정부를 통한 행정의 효율화가 지상과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밑빠진 독’이 된 일본 전자정부 사업에 대한 반성도 한몫했다. 일본은 최근 10년간 20조엔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전자정부 구축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전문지식이 전무한 공무원과 기술력이 낮은 일본 IT기업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집행하면서 무용지물과 같은 정보시스템만 난무한 상황이다.
하라구치 대신 수행을 위해 방한한 염종순 사가현 정보업무개혁과 정보기획감(과장)은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야 이 같은 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다”며 “행정개혁을 동반한 한국의 전자정부 구축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옛날 한국처럼 정보통신부를 만드는 방안까지 수면하에서 검토될 정도”라고 귀띔했다.
◇전자정부 ‘기회의 땅’=일 총무성은 행안부와 조만간 전자정부 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할 계획이다. 전자정부 구축 컨설팅부터 향후 한국 기업이 일본 전자정부 구축 사업에 참여하는 내용까지 포괄적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카스미카세키 클라우드(정부통합전산센터), 지자체 클라우드 사업(새올시스템), 퓨처스쿨(디지털교과서), 지역력창조(정보화마을) 등 한국을 벤치마킹한 정보화 프로젝트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전자정부 구축에 참여했던 기업들의 일본 진출도 러시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김현철 삼성SDS 공공사업1팀장은 “일본은 전자정부 사업과 관련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자율권이 강하다”며 “이미 사가현 등 몇몇 지방정부에서 한국의 전자정부를 도입해 성과를 본 사례도 있어 우리 기업들이 지방정부를 상대로 마케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