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일본에서 보급 중인 전기차 급속충전장치. 자체 표준을 따르고 있다.
전기차 급속충전기의 국제 표준을 둘러싸고 자동차 대국들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최근 일본은 도쿄전력 주도로 도요타, 닛산, 미쓰비시, 후지중공업이 가세한 ‘차데모(CHAdeMO)’란 급속충전기 표준화 그룹을 출범시켰다. 차데모는 영어로 충전(charge)과 주행(move)의 합성어이며 일어로 ‘차 한 잔 마실 동안에 충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출범을 준비해 온 일본 표준화그룹에는 총 158개 회사와 단체가 급속충전기 개발에 참여한다. 각국의 환경규제로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이 세계 전기차 충전인프라 표준규격을 선점하려는 포석이다. 차데모에 총 20개 외국 회사들이 참여하는데 해당 리스트를 살펴 보면 각국이 전기차 분야에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내업체로는 삼성전기와 시그넷시스템이 유일하게 차데모의 44개 정회원 리스트에 올라있다. 두 회사는 일본 자동차업계에 급속충전기를 비롯한 전기차 부품을 수출할 계획이다. 한국전력(KEPCO)은 한단계 낮은 부회원사 자격으로 차데모의 창립행사에 참가했다. 한국전력측은 전기차 충전분야에서 독자표준을 추진해왔는데 향후 일본 도쿄전력과 어떻게 협력할지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일본의 급속충전기 표준화회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대기아차는 독점적 시장지위를 앞세워 국내 전기차 충전규격을 주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데 굳이 일본의 전기차 표준규격이 국내에 도입될 빌미를 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차데모 회원사 명단에 미국계 전력, 에너지회사들은 간간히 눈에 띄지만 미국 완성차업체들 역시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 자동차업계로선 일본이 주도하는 전기차 급속충전기 표준이 확산되는 상황이 전혀 반갑지 않다.
반면, 유럽 자동차업계는 일본 표준을 적극 받아들여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 프랑스의 푸조 시트로엥 등은 이번 일본 차데모 출범식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인 협력의사를 밝혔다.
중국계 업체로는 홍콩 전력회사 CLP가 유일하게 가입했다. 차데모는 당초 중국 전기차업체 BYD 등에 참여를 권유해지만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그동안 이동통신, 가전분야에서 자국 표준을 고집했듯이 전기차도 독자적인 충전표준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황호철 시그넷시스템 사장은 “자동차 강국들이 저마다 전기차 충전표준 주도권을 가지려고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기차 충전분야에 자체 표준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