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애널리스트 두뇌 분석

 애널리스트는 증권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직업군이다. 그들의 평가에 따라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곤 한다. 그러나 똑똑하고 유능한 애널리스트가 써낸 기업 보고서라고 해도 어딘가 구조적인 맹점이 있게 마련이다. 매일 주가변동에 목을 매는 애널리스트 집단의 직업 특성은 가끔 해당산업의 본질적 변화를 외면하고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원인이 된다.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 학술지 ‘오거니제이션 사이언스’(Organization Science) 최근 호에는 애널리스트 집단의 사고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메리 베너 와튼스쿨 교수가 발표한 이 논문은 몇 가지 기업사례를 분석해 애널리스트가 기업체가 기존 기술을 확장하고 보호하는 사업전략에 훨씬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면에 현재의 시장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파괴적 신기술의 잠재력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성향이 드러났다.

 대중의 기대와 달리 애널리스트는 산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그다지 객관적이고 냉철한 보고서를 써내지 못했다. 일류대에서 경제학, 경영학을 배우고 증권가에서 갈고닦은 인재가 웬만한 회사간부의 눈에도 보이는 시장변화를 가끔 읽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카메라, VoIP통신의 사례=이스트먼 코닥은 세계 최대의 필름제조사로 유명하지만 1975년 디지털 카메라를 최초로 개발해 오늘날 거대한 디지털 영상시장을 개척한 기업이기도 했다.

 초기 디지털 카메라는 실용성 없는 장난감 취급을 받았지만 1990년대 들어와 전자기술 발달로 점차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시 코닥은 기업의 명운을 걸고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으로 갈아탈 것인가. 아니면 정체된 필름시장을 더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인가. 코닥은 후자를 택했다.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의 원천기술을 갖고도 사양길에 들어선 필름시장을 지키려다 결국 디카시장의 주도권을 일본 기업에 내주고 말았다.

 만약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을 더 일찍 파악했다면 오늘날 코닥은 디지털 영상시장에서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을지 모른다. 메리 베너 교수는 1990년대 코닥이 필름시장에 올인하는 잘못된 전략을 선택한 데는 월가의 애널리스트가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코닥은 필름시장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APS필름규격과 하이브리드 사진기술(포토CD)을 잇따라 선보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1990∼1996년 미국 애널리스트의 기업 보고서를 살펴보면 실패작인 APS필름과 포토CD를 무려 182회나 언급하고 있다. 같은 시기 애널리스트가 코닥의 신형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 언급한 사례는 단 2회에 불과하다. 심지어 1991년 코닥이 세계 최초로 DSLR를 출시했을 때도 애널리스트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기 일반 언론에서는 코닥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기사가 약 1400회나 쏟아진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애널리스트가 코닥 주식을 추천하는 의견도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기존의 필름사업과 관련된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1997∼2001년 기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닥에 대한 월가의 보고서에서 디지털 카메라가 언급된 사례는 6%에 불과했다. 애널리스트의 디지털 기기에 대한 무관심은 코닥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부의 위상을 약화시켰고 사양길에 들어선 아날로그 필름시장 투자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애널리스트의 보수적 시장 전망이 기업체의 기술혁신을 저해한 사례는 폴라로이드사의 경우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1997∼2001년에 나온 보고서에는 폴라로이드 제품에 대한 언급은 총 629회. 이 기간에 폴라로이드가 출시한 13개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언급은 16회에 그쳤다. 누가 봐도 즉석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의 확산에 따라 단종될 운명이었지만 애널리스트는 과감한 변혁을 요구하지 않은 듯하다. 2001년 폴라로이드사는 늘어나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말았다.

 비슷한 사례는 유선통신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02∼2005년 유선통신 시장은 격변의 시기 거쳤다. 기존 전화망을 거치지 않는 웹 기반의 VoIP 통신이 등장하면서 기존 전화사업자의 아성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가 쏟아낸 보고서에서 유선 전화상품을 언급한 사례는 775회, VoIP에 대한 언급은 16회에 그쳤다. 그나마 VoIP 기술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대부분이고 통신회사의 특정한 상품으로 표현된 경우는 한 번밖에 없다. 또 VoIP는 기존 전화사업의 수익성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방해꾼으로 묘사됐다. 애널리스트가 매수 의견을 내놓는 시기도 통신회사가 VoIP서비스를 시작하기보다 기존의 유선 전화상품을 다양화할 때 더 집중됐다.

 ◇객관적 시장분석의 걸림돌=증권가 애널리스트는 점쟁이가 아니라 현실세계의 기업활동을 주가수익배율이니 주가성장률과 같은 주식시장의 프리즘으로 해석해 대중에게 알려주는 전문가 집단이다.

 애널리스트가 투자종목을 선정할 때 쓰는 방법은 대부분 기계적으로 정형화돼 있다. 그들은 기업이익에 비해서 주가가 싸다고 판단되는 주식이 있으면 매수를 추천한다. 기업이 예상과 걸맞은 실적을 내면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좋겠다. 예상을 웃돌면 보유에서 매수로 입장을 바꾼다. 아무리 일시적이라도 기업의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면 즉각 투자등급을 낮춰 매도 추천을 한다.

 증권가에서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기본틀은 과거 산업화 사회의 경제 패러다임에서 나온 것이어서 업종을 넘어 다양한 첨단기술이 융합되는 요즘 산업환경에는 다소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애널리스트는 대부분 담당하는 산업군에 따라 전문영역을 갖고 기존 사업모델과 몇 가지 변수의 상관관계를 항시 주목하고 있다. 이들에게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파괴적 기술혁신이 일어나는 징조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이것은 모든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시장의 생리를 몸에 체득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매일 주가 변동에 신경써야 하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직업특성상 몇 년 뒤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기술혁신보다는 당장 현금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훨씬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급진적인 신기술에 대응해 사업구조를 바꾸는 전략은 이미 현금을 버는 캐시카우로 자리잡은 기존 사업 분야와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투자자에게 항상 산업계를 꿰뚫고 오류가 없는 전문가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객관적 시장분석의 걸림돌이다. 애널리스트는 항상 증권시장의 ‘평가’에 노출돼 있는 직종이다. 신기술에 대응하는 사업전략을 강력히 추천하기보다는 익숙한 비즈니스 모델의 개선을 권하는 편이 본인과 증권회사에 위험부담이 덜하다. 또 보고서를 쓸 때 자신에게 익숙한 평가모델을 넘어서는 환경변화는 가능하면 의미를 축소하거나 언급을 꺼리는 것이 이미지메이킹에 유리할 수 있다.

 애널리스트가 대학에서 배운 전공도 판단 오류에 영향을 미친다. 유영진 미국 템플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애널리스트의 주류인 경제학, 경영학 전공자들은 원자재 조달과 제품개발, 생산, 판매, AS까지 통합관리하는 수직적 사고에 익숙하다”면서 “IT종사자들이 흔히 서로 다른 요소기술을 결합해서 신상품을 만드는 수평적 사고를 하는 것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너무 좁고 깊게 땅을 파다 보면 주변의 다른 보물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미국의 애널리스트가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에 투자를 하거나 버라이존이 VoIP에 투자를 하는 것은 기존 사업 분야와는 무관한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투자로 간주한 것은 나름대로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어차피 급변하는 컨버전스 시대에 애널리스트가 사용하는 주식시장의 분석 툴만으로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하기 어렵다면 어떤 종목을 적극 추천한다는 전문가의 훈수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배일한·최순욱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