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24일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전격적으로 복귀한다고 선언했다.
’삼성 특검’문제로 2008년 4월22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퇴진을 선언한 지 23개월,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단독 특별사면을 받은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일이다.
◇ 계속되던 ’복귀설’이 사실로=지난해 말 이뤄진 이 전 회장의 특별사면의 가장 큰 대외적 명분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였다.
이를 감안해 이 전 회장은 사면 이후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해외에서 전.현직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과 접촉하고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IOC 총회에 참석하는 등 올림픽 유치관련 이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식행보가 시작된 이후 삼성 주변에서는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 자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단지 ’시간이 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의 개인 대주주로서 지분이 있는데다 사면으로 모든 법적 논란을 털어버리면서 ’여론’ 외에는 다른 부담요소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사면 후 첫 공식행보가 지난 1월 삼성전자가 올해 전략 신제품을 국제무대에 선보이는 멀티미디어 가전쇼 CES였다는 점, 이 행사와 함께 지난달 열린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등에서 삼성의 경영문제, 미래전망에 대해 이전의 ’은둔자’적 이미지와 달리, 거침없는 답변을 했던 점도 그의 조기 복귀설을 뒷받침했다.
특히 지난달 이병철 창업주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는 경영복귀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삼성이 약해지면 도와야죠”라고 답해 복귀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전 회장의 조기 복귀설은 지난 석 달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다만 삼성은 그의 복귀설이 거론될 때마다 대외적으로는 손사래를 쳐왔다.
“당분간은 평창 올림픽 유치에 전념하는 것으로 안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러나 삼성의 경영진들은 대외적 멘트와 달리, 이 전 회장의 복귀문제를 오래 전부터 고민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 삼성의 경영진들이 대외행사에서 이 전 회장의 복귀 필요성을 언급한데 이어 사장단 협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복귀 건의문까지 작성한 사실까지 확인됐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 협의회가 지난달 17일과 24일 양일에 걸쳐 이 전 회장 경영 복귀를 논의했으며,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 전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의견을 취합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 전 회장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 다시 ’위기’ 강조=삼성의 발표내용을 보면 사장단의 복귀요청을 받은 이 전 회장은 “지금이 진짜 위기”라고 언급하며 복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돼있다.
’샌드위치론’을 비롯해 그가 과거부터 여러차례 강조해온 ’위기론’의 재등장이 눈에 띈다.
특별사면후 첫 대외행보였던 지난 1월 미국 멀티미디어 가전쇼 CES에서 일본 경쟁업체들에 대해 “신경은 쓰지만 겁은 안난다”, “기초와 디자인에서 우리가 앞섰고 한 번 앞선 것은 뒤쫓아 오려면 참 힘들다”며 삼성의 경쟁력에 자신감을 피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조다.
이런 상황에서 재등장한 ’위기론’은 이 전 회장의 조기 복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위기 상황에서 조기 복귀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수 있다는 분석에 다름아니다.
삼성 역시 사장단의 회장직 복귀요청과 그의 복귀결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요소로 ’도요타 사태’를 꼽고 있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처음 (복귀)이야기가 나온 게 2월17일인데, 그 무렵 도요타 사태가 가장 강하게 얘기될 때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글로벌 톱 기업이 저렇게 흔들리고 위기에 처할 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회장도 경영복귀를 결정하면서 삼성그룹 공식트위터(@samsungin)를 통해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저간의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다.
◇’전략기획실’ 부활하나=이 전 회장의 공식 복귀와 더불어 또 하나 관심사가 되는 부분은 삼성식 경영을 상징하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전략기획실’의 실질적 부활여부다.
아울러 전략기획실 해체 당시 공식적으로는 퇴진한 이학수 현 고문 등 전략기획실 핵심 구성원들의 복귀도 주목거리다.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출발한 이 기구는 시대상황에 따라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명패를 바꿔달아왔지만 삼성의 성장과정에서 그룹의 중추이자, 총수의 손발로서 강력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이 기구는 지난 2008년 4월22일 이 전 회장의 퇴진선언과 함께 해체가 발표됐으며 이 해 6월30일 공식 해단식까지 가졌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복귀와 함께 유사한 기구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수백여개 법인과 27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삼성에서 총수가 경영을 장악하려면 보좌기구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삼성은 일단 복귀하는 그를 보좌하기 위해 ’삼성전자 회장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인 ’전략기획실’ 설치문제에 대해서는 “사장단 협의회 산하의 커뮤니케이션팀, 법무실 등을 브랜드관리실, 윤리경영실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