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 ‘카드’가 없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의 핵심 현안인 ‘파이로 프로세싱(건식 처리 공법)’을 두고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제시할 마땅할 ‘카드’가 없다는 우려가 원자력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별도 플루토늄 추출 없이 원자력 원료를 재활용하는 기술로 우리측이 주장하는 원자력 원료 평화적 재활용의 핵심 기술이다. 그러나 미국내 핵 비확산론자들은 파이로 프로세싱도 기존의 습식 처리 기술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 의회 비준등을 고려해 적어도 2012년까지는 실무 협상을 마쳐야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런 미국 내 부정적 시각과 함께 북핵 문제라는 정치 현안까지 겹쳐 평화적 재활용이라는 논리적 주장만으로는 파이로 프로세싱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에 내놓을 다른 유인책이 필요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원자력계 한 관계자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재처리’라는 단어 하나에도 미국 내 핵 비확산론자들이 발칵 뒤집히는 민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88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면서 자국 원자력 개발에 유리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기 위해 미국 대일수출적자의 핵심이었던 자동차 수출량을 일부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이제 막 벗어난 시점이라, 당시 일본처럼 미국 측의 양보에 따른 대가로 제시할만한 사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오근배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개발본부장은 “청와대와 외교부·교과부 등 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TFT가 한창 물밑 작업 중”이라며 “시간이 촉박한데다 미국 내에서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협상 개정 대응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파이로 프로세싱=사용 후의 원자력 연료를 처리해 다시 발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사용 후 원자력 연료에 포함된 우라늄을 회수해 4세대 원자로인 고속로·중수로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또 파이로 프로세싱을 거치면 사용 후 핵연료의 부피는 20분의 1로 줄어들고, 발열량은 100분의 1, 독성 감소 기간인 반감기는 1000분의 1까지 떨어져 원자력 폐기물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고체공법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건식 처리 공법’ 이라고도 불리며, 처리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되지 않아 학계에선 평화적 재활용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