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시장에서 엔젤(개인) 투자자가 사라졌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 정책에도 엔젤 투자 활성화 방안은 없다.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엔젤 투자의 현주소는 펀드 결성 현황에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엔젤투자자들이 만든 펀드는 한 건(2억원)에 불과하다. 그 전 해인 2008년에는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맥이 끊겼다. 벤처투자 열기와 함께 개인들이 대거 벤처투자자를 자청했던 2000년 57건(361억원)과 큰 차이다. 당연히 벤처업계에서 엔젤투자자 얘기가 쏙 들어갔다. 2008년 엔젤투자자들이 엔젤펀드 또는 단독으로 벤처에 투자한 금액도 492억원에 불과하다. 그해 7247억원의 벤처 투자가 이뤄진 것의 5%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미국은 2008년 전체 279억달러 벤처투자 가운데 엔젤투자가 무려 190억달러에 달했다. 엔젤이 미국 벤처투자를 이끄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너무나 뜨겁게 달궈졌던 엔젤투자 열기가 오히려 한국에 엔젤투자가 사라진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미국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엔젤투자자로 나서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개인이 주식투자하는 식으로 ‘대박’을 꿈꾸며 엔젤투자자로 나섰다”고 소개했다. 충분한 정보 없이 막연한 기대로 투자에 나섰다가 벤처 버블이 제거되면서 막대한 피해를 본 경험이 엔젤투자 위축으로 이어졌다. 정부도 그동안 국내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한 ‘제2기 벤처기업육성대책’에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시집간 딸에게 친정이 없으면 살림살이가 어렵다. 물어볼 곳이 없어서다. 엔젤투자자가 그렇다.” 한 엔젤투자자의 항변이다. 그는 또 “우리나라에도 잠재 엔젤이 많다. 이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 정부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벤처캐피탈협회가 한국과 미국의 엔젤투자 지원책을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지원 내용이 턱없이 부족했다. 미국에선 투자 손실분을 소득과 합산해 소득공제를 해준다. 또 적격 벤처기업 주식을 5년 보유한 다음 매각할 때에는 이익의 소득세 50%를 감면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세이연제도까지 있다. 손실이 났을 때 일정액을 다음해로 이월해 소득에서 빼 세금을 매기거나 재투자 시 매각 전까지 과세를 하지 않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소득공제 경우 투자금액의 10%를 종합소득금액에서 공제하는 것이 전부다. 이 또한 거의 무용지물이다. 벤처기업으로만 한정, 벤처 등록을 못 받은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혜택이 없다. 엔젤투자자는 초기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관행인데 우리 현실상 초기 기업이 벤처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2008년 투자의 5%그쳐…작년 펀드 결성 1건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한미 엔젤투자 주요 지원책(세제)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