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 금융자산 30억원이 넘는 초우량 고객(VVIP) 확보를 위한 대전(大戰)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초우량고객은 ’울트라 하이’, 즉 부자 중의 부자로서 증권사들의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자산만 30억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등을 포함한 전체 보유 자산이 최소한 50억원에서 1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고품격’을 내세우고 특급 호텔에 입점, 자산관리서비스를 비롯 자녀 유학알선, 집안 대소사 챙기기 등 이른바 ’집사형(執事形) 서비스’로 초우량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증권사들은 울트라 하이 고객 확보를 위한 조직 확대와 인력 보강 등을 추진하고 있어 유치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급호텔에 증권사 지점…고품격 마케팅=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 하나대투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 다른 지점들과 차별화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울트라 하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품격을 내세워 고비용을 감수하면서 서울시내 특급 호텔에 둥지를 튼 것이다. 증권을 비롯해 은행, 보험 등 금융 권역별 출신 최고 베테랑 PB(프라이빗 뱅커)들이 포진해 있다.
특급 호텔은 지리적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최고급 인테리어에서 풍기는 쾌적함과 안락함, 사생활보호 등으로 부자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 PB들의 평가다.
이들 특급 호텔 지점이 겨냥하는 고객은 하나같이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초우량 고객.
물론 금융자산 5억~30억원 자산가도 고객으로 모시고 있지만 적어도 30억원 이상은 돼야 공격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삼성증권 신라호텔 지점과 하나대투증권 인터콘티넨탈호텔 지점은 각각 1조~1조5천억원 이상의 수탁고를 올리고 있으며,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고객만 50명 이상에서 300여명까지 확보하고 있다. 초우량고객 확보 전략은 기존 초우량고객을 통해 소개받는 ’MGM’(Members get Members), 회사 관계자들의 인맥을 활용한 ’SGM’(Staffs get Members), 소속 PB들이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는 방법 등이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초우량고객의 인맥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MGM 방식이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다.
고객 확보와 유지를 위한 PB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고객들이 지점을 직접 찾기도 하지만 약 50% 정도는 PB들이 사무실이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 꽃을 사들고 가거나, 고객의 요구에 따라 지점 세무·부동산 전문가가 고객의 집까지 담당 PB를 동행하기도 한다.
삼성증권은 올해 상반기에 초우량고객 수십 명을 초청해 중국 상하이를 방문, ’화폐전쟁’ 저자인 쑹훙빙(宋鴻兵) 환구재경연구원 원장의 특강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비스도 한마디로 밀착형 종합서비스다. 기본업무인 자산관리서비스에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자녀 유학이나 특정과목 과외강사 알선, 가족 간 재산·이혼 등 분쟁, 2세로의 가업승계를 위한 세무·법률 상담 등도 제공한다. PB들 사이에서는 ’집사형 서비스’로 통용된다.
해당 증권사 CEO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초우량고객 담당 PB들은 인사이동이 거의 없다. 이미 신뢰관계를 형성한 고객과의 지속적인 밀착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다.
해당 증권사들은 베테랑 PB 영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어 초우량고객 유치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 초우량 고객층(UHNW, Ultra High Net Worth)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영업을 전담할 UHNW사업부도 신설했고, 미래에셋증권과 하나대투증권에 이어 오는 6~7월께 테헤란로 인터콘티넨탈호텔에 신규 입점해 초우량고객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국내 보험회사에서 10년간 PB로 활동하다 2002년 삼성증권에 합류한 심재은 신라호텔 지점장은 “부동산 시장이 과거와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고액자산가들의 자산 가운데 금융자산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강북 ’전통부자’ vs 강남 ’CEO형 부자’=부(富)가 형성된 특성에 따라 초우량고객들도 강북부자와 강남부자로 분류된다.
강북에 거주하는 울트라 하이 부자는 ’전통부자’로 불린다. 주로 서울 한남동과 평창동, 중구 등에 거주하면서 3대 이상 ’대대로’ 부를 유지하는 재벌가가 이에 속한다.
이에 비해 강남부자는 대기업 전.현직 CEO(최고경영자)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떼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하나대투증권 인터콘티넨탈호텔 지점의 경우 고객의 약 85%가 전.현직 CEO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강북부자와 강남부자는 성향도 차이가 난다는 게 PB들의 설명이다. 강북부자는 초우량고객을 상대로 한 투자설명회 개최 시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을 주로 선호하는 반면, 강남부자는 CEO의 특성에 맞게 조찬을 선호한다는 것.
투자 성향에서도 강남부자는 보다 공격적으로 위험선호도가 높은데 비해 ’전통부자’인 강북부자는 강남부자에 비해 안전성을 중시한다는 평가다.
이들은 대체로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매우 신중하다. PB들의 조언을 충분히 듣고, 때로는 자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투자자산이 반 토막이 나는 등 뼈아픈 경험에 따른 ’학습효과’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일단 결정을 내리면 행동은 신속, 과감하다.
일부는 ’소수의 관점’을 선호한다. 다른 투자자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라, 역발상, 청개구리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시장이 박스권에 머물면서 초우량고객들도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박스권 장세인 점을 감안해 새로운 성장가능성이 있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이나 상장을 앞둔 삼성생명 등 공모주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삼성증권은 이런 고객들의 관심을 반영해 소속 초우량고객들로부터 1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해 KTB자산운용에 운용을 맡겼고, 조만간 초우량 고객들을 상대로 글로벌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 등 공모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초우량고객들은 또 절상 가능성이 고조되는 위안화나 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이나 주가연계증권(ELS), 홍콩·미국 등에 상장된 해외 ETF(상장지수펀드)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는 금융위기로 속을 썩였던 했던 펀드를 환매하고 직접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직접 골라 주식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