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해상인명구조장비

[이머징 이슈]해상인명구조장비

 미증유의 군함침몰사고에 대처하는 IT강국의 모습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해군당국의 초동대처는 도무지 손발이 안 맞고 해상안전을 위한 IT활용에서 민간보다 오히려 낙후된 모습을 곳곳에서 보였다. 한국이 자랑하는 IT분야의 핵심기술이 해상안전 분야에 일찍 접목됐더라면 인명피해가 지금보다 덜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거친 바다에서 인명구조를 위해 활용되는 각종 IT장비와 기술 현황에 대해서 알아본다.

 

 해상사고에서 목숨을 구하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다는 위치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고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군 당국이 인명구조에 필수적인 위치정보를 조속히 확보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사고지점에서 가까운 장소에 가라앉은 선체를 찾는데도 며칠씩 걸리고 그것도 어선이 먼저 찾아내 유가족의 분노를 샀다.

 전투함정의 특성상 침몰한 선체, 물에 빠진 장병의 위치정보가 적에게 노출되면 매우 위험해지는 상황을 감안해도 해양사고를 대비한 기술투자에 너무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천안함이 침몰하는 과정에서 위치추적장치(GPS)와 비상통신망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이처럼 군당국의 낙후된 IT환경은 장병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데 심각한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정부 지원만 이뤄지면 한국이 민수와 군용을 포함해서 해상구조용 IT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를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해양사고가 났을 때 조난자를 구하는데 가장 효용성이 높은 정보통신기술은 다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휴대폰=해상통신 전문가들은 거친 바다 위에서 가장 범용성이 높은 구조용 통신수단으로 휴대폰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천안함의 함장은 사고소식을 군용무전기가 아닌 이동통신망을 통해서 처음 전달했다. 이는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폰이 해상사고에서 인명구조에 매우 효과적이란 사실을 입증한다. 요즘은 어민들도 바다에 나갈 때는 선박무전기가 아닌 휴대폰 통신을 더 애용하고 있다.

 통화수요가 증가하면서 해상에서 휴대폰의 통화거리는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국토해양부가 무인도와 등대 등에 이동통신 중계기를 설치하면서 연안에서 최대 50㎞ 떨어진 먼 바다에서도 휴대폰 통화가 가능해지고 있다. 최신 휴대폰은 대부분 GPS 기능이 내장돼 연근해에서 조난자의 위치를 알리는데 매우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단말기 기능 향상과 통화권역의 확대에 따라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인터넷 서핑도 못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바다에 빠졌을 때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꺼내면 물에 젖어 십중팔구 못 쓰게 된다는 점이다. 이미 스포츠, 레저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해 방수휴대폰이나 휴대폰 케이스도 몇 종 나왔다. 하지만 장시간 표류하는 조난자의 안전을 담보하기엔 물에서 30분 정도 버티는 생활방수형 휴대폰은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번 천안함 침몰사고를 계기로 해상인명구조에 적합한 휴대폰 단말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널리 보급된 이동통신 인프라와 민간 IT투자를 이용하면 매우 경제적으로 해상인명구조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지금 당장 IT강국의 자존심을 걸고 완벽한 방수 기능과 구난신호를 보장하면서 스타일도 멋진 해상용 휴대폰을 만들어보라. 7만 해군장병과 해경, 어민을 포함해 세계 해운업계의 이동통신 수요를 선점할 것이다.

 ◇휴대형 조난신호 발신기=요즘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는 RFID 라이프재킷은 사실 휴대형 조난신호 발신기를 평범한 구명조끼에 부착한 형태다.

 조난자가 신호발신기를 누르면 10초∼1분 간격으로 자신의 GPS 위치정보를 반경 수㎞에 보낸다. 해경은 지난해 1월부터 조난신호발신기 320대를 해경 특수부대 요원들에게 보급하고 서해지역의 1000톤 이상 해경 함정 16척에 위치추적용 수신기를 설치한 바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008년 9월 중국 불법어선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해경은 실종된 지 17시간이 지난 뒤에야 숨진 박 경사를 찾아냈다.

 해경이 도입한 휴대형 조난신호발신기는 구명조끼에 부착된 단말기 버튼을 누르면 인근 해경함정의 전자해도에 조난자의 위치, 신원정보가 자동표시돼 신속한 구조활동을 펼칠 수 있다. 해군 당국에서 이 장비를 미리 도입했다면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이 훨씬 원활했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작전 중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전투함정의 요구사항에 민간용 구조장비는 맞지 않는다. 구조신호가 거꾸로 적함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해군은 함정이 침몰해도 위치파악이 좀처럼 안 되지만 미 해군은 바다에 빠진 각개 병사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인공위성으로 찾는 조난구조시스템까지 운용하고 있다. 우리 해군도 암호화된 위치정보를 전송하는 군용 조난신호 발생기의 개발을 검토할 시기가 왔다는 지적이다.

 ◇레이더 응답기(SART)=선박 조난시의 표류위치를 인근 선박에서 보유한 운항용 9㎓(X밴드) 레이더 화면에 표시해 주는 장치다. 수색 및 구조용 레이더 응답기(SART:Search and Rescue Radar Transponder)라고 한다. SART에 선박의 레이더 신호가 잡히면 즉시 같은 주파수의 응답신호를 발사해 상대방 레이더 화면에 점 형태로 뜬다.

 조난신호 발신기는 짝이 맞는 전용 수신기에만 위치 좌표가 나타나지만 레이더 응답기는 모든 선박이 사용하는 레이더 상에 신호가 나타나기 때문에 인근을 지나는 배가 와서 구조해줄 확률이 훨씬 높다.

 현재 SART는 팔뚝만한 크기의 제품이 주로 사용되는데 덩치를 담배갑 크기로 줄이고 개당가격도 10달러 이하로 낮춰 개인용 구조장비로 대량보급하는 계획이 각국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일본의 동경해양대학은 ‘One mile SART’라는 프로젝트에 따라서 구조신호를 반경 1마일(1852m)에 쏘는 1달러짜리 SART 개발 계획이 80% 정도 진척된 상황이다. 대량생산만 담보되면 명함만한 초소형 SART를 모든 선박의 구명조끼에 부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해경, 해군과 같은 특수조직은 휴대형 조난신호 발신기를 장착하고 어업, 해운, 수상레저용으로 범용성이 뛰어난 SART가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해저 인명구조는

해상에서 벌어지는 인명구조작전은 휴대폰, 조난신호발신기, SART로 대부분 커버할 수 있다. 해양사고에서 아직도 남은 사각지역은 시커먼 바닷 속이다.

 지상과 달리 물 속에서는 전파의 산란과 감쇄현상이 일어나 무선전파를 이용한 통신이 불가능하다. 천안함처럼 배가 물 속에 침몰하면 수십m 깊이에서 기존 해양 IT장비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바다 속과 지표면 간 초음파를 이용한 수중통신기술을 앞장서 상용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수중무선통신분야에서 후발주자지만 다행히 세계 정상의 기술 수준에 올라간 상황이다.

 ◇수중 무선통신시스템=전파통신이 불가능한 수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음파로 신호를 주고 받았다. 문제는 음파의 느린 속도(1.5㎞/s)와 제한된 주파수 대역, 표면과 해저면의 난반사 등으로 지상과 같은 통신환경을 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됐다.

 국토해양부는 물 속에서 음파를 이용해 자유롭게 디지털 데이터를 주고 받는 수중 무선통신시스템을 국산화하고 LIG넥스원을 통해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산 수중 무선통신시스템의 전송반경이 6㎞고 전송속도는 10Kbps로 기존 미국 연구소가 먼저 개발한 수중통신장비보다 두 배는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수중 무선통신시스템을 수중 구난장비로 만들어서 선박에 장착하면 침몰된 직후부터 정확한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있어 천안함 사고에서 드러난 초기대응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임정빈 목포해양대 교수는 “해상구조를 위한 IT분야에서 한국기업들은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좁은 내수시장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정부차원에서 RFID 구명조끼와 같은 첨단 해상구조장비를 의무화하면 천안함 사건과 유사한 해양사고가 일어나도 인명피해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