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정보책임자(CIO)는 조직의 전략과 비즈니스 요구 변경에 선제 대응하는 혁신 리더가 돼야 한다.” 지난달 CIO BIZ+가 개최한 ‘CIO 서밋 2010’ 콘퍼런스에서 이강태 하나SK카드 사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강조한 내용이다.
90년대 후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과 차세대시스템 구축 붐이 일면서 CIO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통상적으로 전사에 걸쳐 ERP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만큼 이를 진두지휘하는 CIO는 전사 프로세스의 디지털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혁신의 핵심적인 공로자로 평가받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들이 1회성 혹은 이벤트성 사업으로 끝나다 보니, 이후 CIO가 지속적인 비즈니스 혁신활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CIO의 역할이 최고혁신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을 겸한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극소수의 대기업만이 이 범주에 들 뿐이다. 관건은 최고경영진의 마인드와 CIO 스스로의 변화 노력이다. IT혁신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런 사정은 해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난해말 보스톤컨설팅그룹(BCG)과 미국 MIT경영대학원의 정보시스템리서치센터(CISR)가 공동으로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
BCG는 IT조직의 역할이 기업의 전이(transformation)를 지원하는 요청처리형 조직(order takers)에서 혁신을 주도해 나가는 변화주도형 조직(Business change drivers)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문조사 결과 변화주도형 IT조직은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요청처리형 조직에 비해 기존 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에 사용하는 예산 비중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요청처리형 조직은 IT예산의 70%를 시스템 운영에 사용하지만 변화주도형 조직은 62%를 지출하고 있다. IT조직이 비즈니스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IT예산에서 신규 프로젝트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반드시 높여야 한다. 기존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비즈니스 혁신을 선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포인트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IBM의 팻 툴 CIO가 자사의 IT예산 중 신규프로젝트가 차지하는 비중을 매년 2%포인트씩 늘려가는 것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운영비용을 절감하고 프로젝트비용을 늘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변화주도형 IT조직은 요청처리형 조직에 비해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프로젝트 시작에서 비즈니스 가치를 구현하는 시점까지 3분의 1 정도 기간이 단축된 약 9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변화주도형 IT조직의 구성원들이 요청처리형 조직에 비해 업무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점이다.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결국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이처럼 변화주도형 IT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CIO 중 7%만이 현재의 IT역량이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약 60%의 응답자는 기대수준과 현재 역량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변화주도형 IT조직으로 진화해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BCG가 제시한 ‘IT의 11가지 역할 공식’을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IT의 11가지 역할을 중요도와 역량성숙도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인데, 중요성이 높은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역량성숙도가 눈에 띄게 뒤처지는 부분들이 있다. 엔터프라이즈 아키텍트, 비즈니스관계(BR) 관리자, 비즈니스 프로세스 엔지니어 등이 대표적이다. 항목마다 특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3가지 모두 IT조직의 비즈니스 역량 강화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주도형 IT조직으로 진화하기 위해 CIO들이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박서기 CIO BIZ+ 편집장 겸 교육센터장 sk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