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셋톱박스 업계 ‘복병’ 만났다

셋톱박스 업계가 칩 수급난에 직면했다.

오는 6월 남아공 월드컵 효과와 전 세계적인 디지털 전환 작업의 영향으로 HD 셋톱박스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칩 부족으로 적기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글로벌 셋톱박스 시장 1, 2위 업체인 모토로라와 톰슨의 시장지배력 약화로 한국 기업이 상위권 도약의 호기를 맞았지만,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셋톱박스에는 일반적으로 MPEG 디코딩·튜너 등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현재 물량이 부족한 칩은 셋톱박스와 디지털TV, DVD플레이어 등을 연결시켜 주는 메인 컨트롤러 칩이다. 메인 칩은 셋톱박스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하며, 영상을 압축·전송·출력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칩 가격은 기능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통상 개당 10달러 전후에서 형성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HD칩은 물론 SD 셋톱박스용 칩 수급에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톱박스 A사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파운드리 회사들이 신규투자를 축소한 탓에 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생산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 전반적으로 부품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셋톱박스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셋톱박스용 칩은 주로 브로드컴· ST마이크로 등 외국 업체들이 공급해 오고 있다. 이들 기업이 생산을 위탁하는 파운드리에 대한 주문이 폭주하면서 칩 생산 리드타임이 길어지고 있다.

브로드컴 측은 “셋톱박스 뿐 아니라 전자제품용 칩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동계올림픽에 이어 오는 6월 월드컵 등 소위 짝수달 효과가 나타나면서 셋톱박스 수요가 예상보다 많아 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부품조달은 수요 증가에 따른 문제로 공급측면에서 완전 해결이 되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이라며 “다만 2분기 중에는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셋톱박스 출하량은 지난해 약 1억6000만대를 기록한 데 이어 디지털 전환작업의 막바지인 2012년 경 2억대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선진국들의 디지털 전환비율은 아직 55% 수준에 머물고 있어 셋톱박스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원석·윤건일기자 stone20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