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 시장의 악습 중 하나였던 막무가내식 벤치마크테스트(BMT)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BMT를 실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리면 수요자는 보다 효율적으로 공급자를 선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급자도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될 전망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진행된 주요 차세대시스템 입찰에서 BMT 없이 제안서만으로 성능을 평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수협과 대구은행이, 공공권에서는 코레일과 정부통합전산센터 등이 BMT 없이 공급자를 선정했다. 조만간 시스템 공급업체를 선정할 예정인 한국투자증권도 BMT를 실시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BMT는 차세대시스템 입찰에서 필수 과정으로 인식됐다. 발주자 모두 ‘우리 환경’에 맞는 장비를 찾는다는 명목 아래 BMT를 실시했다. 정확한 성능 비교를 위한 BMT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BMT가 발주자의 특권처럼 여겨지면서 부작용을 낳았다.
엇비슷한 시기에 각 사이트마다 동일한 장비로 BMT를 반복하면서 비효율성이 지적됐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대로 늘어나는 BMT 비용을 업체가 모두 떠안는 것도 문제였다. 그나마 사업을 수주하면 다행이지만 입찰에서 떨어지면 BMT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관행이 확실히 개선됐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버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구축사례나 공인기관의 성능 검증치는 무시되고 매번 비슷한 BMT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이는 서버 성능 상향 평준화로 BMT의 변별력이 줄어든데다 발주자 사이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BMT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인식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김동석 정부통합전산센터 자원관리과장은 “업체 관계자가 며칠씩 상주하며 많은 돈을 들여 수행하는 BMT는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아래 일부 새로운 기능을 시험하는 것 말고는 BMT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병성 한국투자증권 부장은 “필요에 따라 BMT를 할 수 있겠지만 도입하려는 제품 성능을 다른 유사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 굳이 BMT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가격경쟁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다. 경기불황으로 수요자가 제품 성능 대신 가격에 평가 가중치를 두면서 제품가격 깎기에 주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