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 시대에 최대 열풍 중 하나는 애플의 i시리즈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2∼3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 LG가 유독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우리나라 전자업계와 통신업계가 글로벌 아이폰의 열풍을 간과하고 그동안 뭐했느냐는, 우려 수준을 넘어 비난의 소리가 봇물처럼 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컨대 지난해 폐지되기 이전까지 휴대폰에 위피 탑재를 의무화한 결과, 국내 업체에는 보호막이 됐지만 외국 업체에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그 이후 아이폰 도입을 위한 협상이 추진됐지만 보조금, 요금, 무선인터넷 개방 등 조건이 맞지 않아 거듭 연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다음달폰’이라는 자조적인 별명까지 얻게 됐다. 더구나 통화료, 단말기 판매 등 수입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통신업계와 전자업계가 공히 아이폰 도입을 미뤘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아이폰의 경쟁력은 풍부한 콘텐츠에서 비롯된다. 아이폰에 공급하는 CP는 수익의 70%나 배분받아 10만개가 넘는 방대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CP는 과거 통신회사에서 챙길 수 있는 수익이 5% 수준에 불과해 납품처를 대거 아이폰으로 옮기고 있다는 서글픈 소식도 들린다. 우리나라 통신회사들은 목전 이익에만 급급해 무선인터넷을 유료로 접속하도록 유도하고 저수익 기능을 제거하는 등 스펙 다운 논란도 꾸준히 제기된 터였다.
이처럼 스마트한 i시리즈를 더 스마트하게 잠재울 순 없을까. 아이폰에는 방대한 양질의 콘텐츠가 있는 반면에 그 이면에 문제는 없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보호가 갈수록 중요시되는 환경에서 애플은 전용 하드웨어, 운용체계, 언어로만 아이폰 콘텐츠의 개발과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용 즉, ‘폐쇄’는 강점인 동시에 약점도 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보산업 역사를 돌이켜보면 PC 시장에서 초창기 애플컴퓨터는 탁월한 인터페이스로 천하무적일 것처럼 보였지만 ‘폐쇄’로 인해, 클론 등 ‘개방’을 허용한 IBM 진영에 선두자리를 빼앗겼다. VCR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은 화질 등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개방’으로 뭉친 글로벌 기업들의 VHS 방식에 안방을 내준 사례도 있다. 하드웨어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과신하며 한때 폐쇄를 고수하던 IBM도 냉혹한 현실을 절감하고 개방으로 선회한 바 있다. IT분야 뿐만아니고 역사도 폐쇄와 개방 간에 간발의 정책 차이로 인해 세상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구한말 대원군의 폐쇄 정책으로 인해 조선이 근대화를 향한 소중한 기회를 상실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소박한 진리가 의미하듯 폐쇄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경쟁 우위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은 보장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폐쇄 기반의 일시적 기술 우위는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시장, 전략 등 또 다른 차원에서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것이다. 그래서 만시지탄이지만 우리나라 통신업계와 휴대폰업계가 앱스토어 활성화를 위해 공조하고 휴대폰에도 와이파이를 탑재하며 통신업계는 와이파이를 상호 개방하는 등 폐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한 i를 더 스마트하게 잠재우기 위하여....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