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View Point- [취재수첩] 한국 푸대접하는 외산 솔루션업체

 “새로운 요구 사항이 있을 때마다 본사 R&D센터의 시스템 수정과 검증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것도 어렵게 지원해 주는 것이죠.”

국내 글로벌 전자기업의 PDM 프로젝트 관계자는 예정된 프로젝트 완료일을 1년 이상 훌쩍 넘겨 올 8월에나 오픈하게 되는 이유를 솔루션 업체의 소극적인 태도에 있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대규모 PDM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커스터마이징이 필수였지만 커스터마이징에 필요한 솔루션 업체 본사의 지원이 미약했고 국내 지사는 별로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지난해부터 제품수명주기관리(PLM)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중인 한 대형 조선기업 관계자도 “외산 PLM 패키지를 사용할 때는 추가 개발 작업이 필요한데도 솔루션 업체 지원이 미미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지난해 조선업체들의 한국형 PLM 공동 개발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외산 글로벌 솔루션 업체들은 국내 대형 고객사, 특히 세계 시장에서도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내 기업들에게는 요구 사항을 적극 맞춰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를 “투자”라 부른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비슷한 요구를 갖고 있는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는 추가 판매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피스 프로그램도 아닌데 지역적 상황, 기업 환경을 반영하지 않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외산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패키지가 과연 있을까. 결국 사용자 기업은 큰 돈을 주고 패키지를 도입하고도 패키지의 좋은 기능을 활용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고객’으로서 가치가 있는 대기업들의 사정이 이러니 규모가 작은 기업들의 외산 패키지 도입 애로는 더욱 크다. IT예산 여력이 있는 대기업 역시 커스터마이징의 부담을 전적으로 지는 것은 당연하고 솔루션 업체의 API 개방 등 커스터마이징에 필수적인 지원이 너무 느리게 진행돼 더 많은 프로젝트 비용과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최근 외산 기업콘텐츠관리(ECM) 패키지 기반으로 문서관리 프로젝트를 추진한 정보통신 대기업도 비슷한 애로를 겪었다. 사본 유통을 막기 위해 문서 원본을 ECM 서버에 저장하고 원본이 위치한 곳의 URL을 통해 문서가 유통되는데, URL 변환 과정에서 문서의 한글 파일명이 깨지면서 문자열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해당 솔루션 업체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결국 스스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했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기능을 개발하고 직원들이 익숙해지도록 교육도 실시했다. 프로젝트 기획 초기 예산에는 이러한 비용은 아마 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전략적 시장으로서 한국의 중요성, 한국의 글로벌 기업 공략 등 판에 박힌 사업 전략을 떠들기보다 내실 있는 고객 지원을 기대한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