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가치사슬의 훼손’ ‘사라진 IT어젠다’
흔히 ‘IT 생태계’를 구성하는 가치사슬로 서비스·네트워크·콘텐츠·단말(장비)을 꼽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 정부 IT정책의 부재 원인을 가치사슬의 붕괴에서 찾는다. 이는 IT산업에 대한 규제와 진흥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IT생태계를 포괄하는 IT산업 총괄기능이 사라지면서, 업계는 우왕좌왕하고 부처 간 중복과 다툼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는것이다.
이번 정부는 출범 초기 IT산업의 지향점을 융합으로 잡았다. IT관련 기능을 분산함으로써 분야별 전문성을 확보하고, IT를 전통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한다는 것이 취지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산업과 시장은 이 정책에 낙제점을 주고 있다.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고, IT 정책 기능을 여러 부처로 분산하면서 추진 주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 세계는 IT와 콘텐츠를 결합해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하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IT와 콘텐츠의 분리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방송통신과 콘텐츠의 규제와 진흥 기능을 분리하려 하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이대로라면 스마트폰용 콘텐츠 육성 정책도 부처별로 나눠가질 판이다. 아이폰·아이패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콘텐츠 중심의 IT트렌드와도 상반된다.
가장 큰 문제는 ‘IT 어젠다의 실종’이다. 부처별 영역다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미래를 읽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현행 IT정책의 문제점은 ‘본질적 IT’에 있다. IT 융합도 IT본질에 대한 숙고 없이는 사상누각이다. 실제로 현정부의 주장처럼 IT는 타 산업 정책기반으로 스며들고 있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이자 그 수준도 ‘프로세스 개선’을 넘지 못한다. 어젠다는 없고, 업그레이드만 있는 셈이다.
이원우 서울대 법대 교수는 “정통부 해체 이후 IT산업총괄 기능이 사라지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업계, 시장까지도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IT는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세계를 주도했고 경제 위기 때마다 지탱하는 힘이 돼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총괄하는 독립부처는 미래먹거리 창출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인수위 당시 정통부 해체 논리 VS 현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