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는 화실이나 미술관에만 있지 않다. 건물 공사장의 가림막도, 고층건물의 커다란 외벽도 캔버스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소재도 물감이나 페인트가 아니라 조명으로도 가능하다.
이처럼 미디어를 활용해 건물의 벽면을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을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라고 부른다.
미디어 파사드는 IT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미디어 아트와 디지털 아트의 결정체다. 조명으로 다이내믹한 동영상이나 도시의 규제 여부에 따라 상업적 광고도 가능하다. 1996년부터 시작된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에서는 현란한 광고가 나온다.
외국에서는 인터랙션 기능이 강조된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38층 덱시아 타워는 15만개의 LED(자체 발광다이오드)를 시민들이 직접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해 건물 외관의 디자인을 기하학적 패턴으로 바꿀 수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블링켄라이트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건물 전체가 거대한 퐁(2명이 작은 막대기로 공을 쳐서 공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게임) 게임장으로 변모한다.
우리나라에도 미디어 파사드가 다수 생겼다. 서울 강남의 GS타워, 서울 상암동의 누리꿈스퀘어, 금호아시아나 본관 건물, 부산의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그것이다.
특히 서울역 앞의 대우빌딩은 서울스퀘어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쪽 벽면에 LED 전구 4만2000개를 설치해 세계 최대 미디어 파사드로 탈바꿈했다. 저녁이 되면 미디어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 양만기를 비롯해 건축가겸 디자이너 론 아라드, 사진작가 배병우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선보인다.
건물에 미디어 파사드가 설치되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우선 그 건물은 랜드마크가 돼 홍보 효과가 있고, 그로 인해 그 건물의 임대율이 높아져 수입이 올라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근 지역의 이미지도 좋아져 상권도 발달한다. 최근에는 LED로 미디어 파사드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LED 산업을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다.
미디어 파사드를 캔버스로 삼는 미디어 아트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트렌드이다. 우리나라는 행인과 차량 운전자에 미치는 교란 효과 때문에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를 약간 푸는 것이 건물주, 기업, 예술가,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혜택을 주게 될 것이다.
아트는 사람들이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소비재가 아니라 다른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중간재와 생산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창조 사회에서 아트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미디어 아트가 사람들의 울적한 감성을 달래주는 카타르시스(catharsis)에 그치지 않고 촉매 역할을 하는 카털리스트(catalyst)가 되도록 하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겸 이마스 대표 mjkim896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