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공원에 사는 사자가 그곳을 완벽한 생태계라 믿는다면 착각이다. 사파리는 동물원 우리보다야 쾌적하겠지만, 결국 조련사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야생에서 먹고 살 길이 아득하다면, 생존과 약간의 자유가 보장된 사파리를 선택하는 수밖에.
2003년 4월 28일 등장한 애플의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iTMS)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훌륭한 사파리 공원이 됐다. 인터넷의 발달과 그로 인한 불법복제의 확산으로 콘텐츠 사업자, 특히 음반사업자들은 변화의 기로를 모색하기 전에 생존의 위기에 처했다. 페어플레이라는 애플만의 DRM을 써야하고, 곡당 0.99달러란 가격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CD 대신 디지털 음원을 팔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여기에 기존의 음반산업 체계에서 대안을 찾던 소규모 레이블과 인디뮤지션까지 가세했다.
이제 아이튠즈는 미국 제1의 음악 유통 창구이며 전 세계적으로 100억곡 이상이 팔리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는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가 열리지 않았지만, 에픽하이와 같은 뮤지션들은 이 공간을 자신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발판으로 삼고 있다.
애플이 길들인 것은 사업자만이 아니었다. 아이튠즈 초창기에 상당수 이용자들은 냅스터에서 받은 음악 파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목적으로 아이튠즈를 이용했다. 하지만, 차츰 손쉽게 음악을 받아 자신의 아이팟에 바로 저장할 수 있는 서비스에 길들여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유료 구매도 정착했다. 2007년 애플이 EMI와 손잡고 DRM 프리를 선언했을 때도 또 다시 불법 파일이 판칠 거라는 우려도 일었지만, 유료 구매에 익숙해진 소비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음악에서 시작한 콘텐츠 유통은 TV시리즈, 영화, 애플리케이션까지 확장됐고,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아마존의 성역으로 여겨졌던 e북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음원 다운로드 100억곡.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20억회. TV시리즈 유통 1000만건. 이 숫자만으로도 애플이 디지털 콘텐츠 유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애플이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를 열었다는 옹호론과 아이팟·아이팟터치·아이폰 등의 기기와 결합한 폐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아이튠즈를 소개하는 가장 첫 마디는 ‘이것이 바로 엔터테인먼트입니다(That’s entertainment)’이다. 이 속에선 애플이 아이튠즈 사파리에 담을 콘텐츠의 영역을 더 넓어질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콘텐츠 사업자건 이용자건 그것을 벗어날 필요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고 안락한 디지털 콘텐츠 사파리는 계속 확장 공사 중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