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SW공학센터가 발표한 국내 SW기업 공학 평균점수는 56.6점에 불과했다. 60점을 넘지 못한 거의 ‘낙제’ 수준이었다. SW공학은 SW개발 프로세스·기술·인력 등을 평가한다. 한마디로 SW 품질 수준과 직결된다. 현재 미국이 90점대, 인도가 80점대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는 말이다.
지난 28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발표는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 SW업체들이 국제 SW 품질인증인 CMMI 인증을 대거 받았으나, 실제 개발과정에는 인증 프로세스를 밟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증을 받은 회사 제품이나 그렇지 않은 제품이나 개발 후 결함 수는 거의 똑같았다. 단지 공공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간판’을 위해 수억원의 인증료를 지불한 셈이다.
한국 SW산업이 변방에 머문 가장 큰 이유는 낮은 기술력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저급한 품질’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은 SW 분야에서 눈부신 국산화를 이뤄냈다. 운용체계(OS), 데이터베이스관리솔루션(DBMS) 등 핵심 솔루션에서 응용 애플리케이션까지 글로벌 기업이 독점한 시장에 하나씩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국산 SW 도입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DBMS는 공공기관들조차 국산을 도입하는 데 망설인다. 특히 공공기관의 기간계 시스템에 국산 DBMS가 구축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만큼 품질을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해외에서는 더욱 찬밥신세다. 브랜드 인지도 자체도 미미한데, 품질까지 보장되지 않으니 바이어들은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낮은 품질→저조한 도입률→낮은 인지도 등 악순환이 이어진다.
최근 글로벌 SW시장에는 ‘품질 지상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품질경영의 대명사로 꼽힌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사상 초유의 리콜사태 때문이다. 아직 공식 확인은 안 됐지만, 전자제어장치의 SW 결함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면서 SW 품질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인터넷·모바일 등 통신환경의 발달로 각종 해킹이나 바이러스가 만연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바이러스나 해킹은 SW의 허점을 파고들기 십상이다. 품질이 완벽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SW 소비자의 품질 요구사항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미국 등 SW 선진국은 이를 감안해 이미 198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SW 품질인증기관을 운영하며 SW품질 향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해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산하 SW공학센터가 설립되면서 SW 품질 향상 프로그램이 본격화됐다.
SW공학센터는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요구하는 업무분석, 설계, 개발 가이드라인은 물론이고 체크리스트를 한국 실정에 맞게 연구할 예정이다. 또 SW 테스팅 기준이나 기술성 평가기준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식경제부도 최근 중소 SW업체 품질향상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 사업도 시작했다. 총 30억원을 투입하는 이 사업은 중소업체에 SW공학기술 적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굿소프트웨어(GS) 인증 등의 사업을 통해 국내 SW품질 경쟁력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SW공학 수준이 여전히 세계 최하위인 것을 감안해 보다 공격적인 품질향상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SW업체들은 해외시장 공략을 위해 품질향상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노하우가 부족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에도 현지 인증제도나 품질기준 등에 대한 정보와 준비부족으로 낭패를 보기도 일쑤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올해 출범한 SW공학센터가 이 같은 업계 욕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희 현대정보기술 사장은 “SW공학센터가 당초 산업계 기대에 비해 핵심 전문인력의 영입이나 예산 배정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며 “SW공학기술을 높이는 것은 SW산업의 미래에 대한 투자인 만큼 정부차원의 중장기적인 안목과 정책적 배려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선진 개발 프로세스를 적극 받아들이는 등 전향적인 변화도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빨리빨리’ 문화로 숨가쁘게 성장해온 역량에 좀 더 세심하고 완벽주의를 기하는 기업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SW개발 완료 후 결합 수정비용이나 엄청난 지체상금을 감안할 때 경영효율화 측면에서도 기업들은 SW 품질향상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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