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보다 어려운 모험 택하겠다"

"쉬운 길보다 어려운 모험 택하겠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실력과 도전정신, 끈기를 겸비한 국가대표급 과학자 5인이 최근 선정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성과를 수없이 도출했지만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모험연구를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벨상 1호를 꿈꾸며 국가과학자로 ‘제 2의 과학기술 인생’을 시작하는 국가과학자 5인의 포부와 과학계에 던지는 제언을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들어본다.

 “안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모험을 시작합니다.”

 2010년 국가과학자 5인 중 물리학계에서는 유일하게 국보급 과학자로 선정된 노태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53)는 결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리학계를 대표해 국가과학자가 된게 미안하고 또 책임감도 무겁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10년 뒤 꼭 우수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우리가 세계 연구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고위험 분야를 택했다”며 향후 연구에 대한 굳은 의지도 피력했다.

 노 교수가 국가과학자로 집중할 연구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분야 발전에 기여할 고집적·고효율 신개념 소자’이다. 1990년대 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강유전체 분야에 뛰어들어 학계를 선도해온 노 교수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신재생에너지가 세계적 화두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대부분 기존 물리 개념을 적용한 실험에 집중한다”며 “선진국들은 한 걸음 더 나가 이 분야의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데 힘을 쏟아 우리나라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단순히 과학계의 트렌드나 유행을 쫓기보다 고생스럽더라도 우리나라가 리딩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연구 철학이다.

 노 교수는 “지난 1989년 400만원의 연구 지원비를 받아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정부와 산업계의 기초연구에 대한 마인드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예산 지원은 아직도 기초과학의 성장을 가로막는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의 연구비 지원 시스템은 기초과학과 공학 가릴 것 없이 모든 연구분야에 획일한 잣대를 적용, 연구비를 N분의 1로 분배하고 있다”며 “자신의 실험실을 마련해 고가의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젊은 물리학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대학이 초기부터 우수 연구실에 8억∼9억원의 자금을 대주는 것과 달리 우리는 1억원을 따내기도 어려워 실험실 구축에만 5∼10년이 걸린다”며 노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노 교수 역시 “연간 15억원씩 최대 10년간 총 150억원을 연구자 1인에게 지급하는 국가과학자 제도가 없었다면 ‘신재생에너지’처럼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소요되는 분야를 엄두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10년의 다짐을 묻는 질문에 노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모험 연구를 통해 동료 물리학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이 분야에서 우리가 외국을 다시 추격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태원 교수의 연구성과는>

 노태원 교수의 연구 분야는 한 마디로 ‘반도체 소자 크기의 양자역학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산화물을 찾는 것’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소자의 급격한 발전 과정에서 노 교수는 현재의 메모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를 찾기 위한 과학적 메커니즘을 지속적으로 규명해왔다.

 서울대 교수 재직 중 안식년 1년 동안 그는 해외로 나가지 않고 드물게도 LG종합연구소 방문교수직을 택했다. 기업들이 과학적 메커니즘을 등안시 하다가도 공정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근본적 메커니즘 규명에 목말라 하는 것을 보고 고집적 산화물에 대한 연구를 한층 가속화할 수 있었다.

 강유전체 분야에서도 그의 연구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99년 네이처 논문(강유전체 산화물 박막의 피로현상의 메커니즘 규명 및 차세대 메모리인 F램용 신물질 개발)은 지금까지 1100번 이상 인용됐다. 매년 100회 이상 인용횟수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자 중 논문 주저자로 논문이 1000번 이상 인용된 사례는 딱 2건에 불과하다.

 박성현 국가과학자 종합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국내의 열악한 연구 환경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신성장동력인 고집적 산화물 메모리의 원천기술을 확보해 우리나라 응집 물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공이 크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