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주권 포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애플 아이패드에 대한 ‘형식인증 면제’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업계는 국가 인증제도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자, 향후 인증업무 수행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문제가 생기게 되면 통관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미국 FCC방식을 도입해 정부 권위와 얼리어답터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대안을 마련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2일 정보통신업계와 학계는 최근 애플 아이패드 형식인증 면제에 대해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제품을 구입해 공짜로 시험을 해준 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정부 방침은 법적 근거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개인 반입에 한정한다고 할지라도 이 조치가 실제로 이뤄져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도입 요구가 있는 정보통신기기라면 뭐든지 구입해 시험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방통위 스스로 구입해 시험하고 문제가 없다면 해당 기기가 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개인 사용이나 연구 목적으로 들여 온 소량의 물품은 큰 문제 없이 통관돼 왔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조치를 취하는 수준에서 진행됐다. 방통위 스스로 인증을 해 주겠다는 것은 인증제도 자체를 흔드는 어처구니 없는 행정조치”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방통위가 인증한 것으로 간주한 제품의 변종에 대한 처리 문제다. 방통위 스스로 인증한 제품이 유통과정에서 일부 버전이 바뀌고 주파수 등이 변조된 제품이 나오게 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통상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해당 제조업체나 수입업체가 규명의 주체가 되는데, 이번 경우는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뒤집어 써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미국 ‘FCC-740 Form’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FCC-740 Form’은 제품 내용과 용도를 간단히 명시한 수입신고서 양식의 하나다. 문제가 생기면 통관한 자(반입자)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 성격이 짙다. 언제든지 FCC가 요구하면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업계는 해외 사례를 분석해 정부 권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얼리어답터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