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데스크칼럼- 돈 되는 IT아키텍처

 며칠 전 매킨지 쿼털리(McKinsey Quarterly) 웹사이트에서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다. ‘비즈니스 요구를 기반으로 IT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Why business needs should shape IT architecture)라는 아티클에 15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추천 횟수도 100건에 육박했다. IT 관련 아티클은 몇 개월이 지나도 대부분 댓글이 10개 미만이고 추천 횟수도 50건을 넘는 경우가 드문데, 게재된 지 한 달도 안된 아티클에, 그것도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EA) 관련 글이 이처럼 호평을 받는다는 게 신기했다.

매킨지에 따르면 제대로 된 EA관리 체계를 도입할 경우 아키텍팅 인력을 30%나 줄일 수 있고,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시간은 무려 50%나 단축할 수 있다. 그만큼 EA관리가 중요한데, 대부분의 CIO는 EA관리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아티클은 한 은행이 EA관리를 통해 IT부문이 비즈니스 기여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은행은 EA관리 체계를 갖추기 전에 각 나라별로, 또 국가간 업무 처리를 위해 무려 29개의 굵직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사 업무를 별도 시스템으로 처리하다 보니 중복도 많았고, 관리부담도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EA체계를 도입하면서 글로벌 공유(shared), 국가별 시스템 등 단 4개의 시스템으로 아키텍처를 단순화했다. 빌딩블록처럼 만든 것이다. 그러자 개발자 등 IT인력들이 좀더 생산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 은행이 성공적인 EA관리 체계를 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비즈니스와 IT에 모두 해박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아키텍처그룹의 책임자로 앉혔다(리더십). 비즈니스 중심의 업무목표를 수립하고, 철저하게 그에 맞춰 핵심성과지표(KPI)를 운영했다(거버넌스). 그리고 기술이 아닌 비즈니스 요구를 중심으로 새 청사진을 모델링했다(새 아키텍처 모델). 아키텍처 밑그림에는 복잡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사양을 담은 것이 아니라 IT가 비즈니스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서술했다.

한번은 현업부서에서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경영진에게 새 지급결제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기획안을 올렸다. 상세한 IT아키텍처에 대한 내용만 무려 300Gb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영진은 이 프로젝트를 승인하지 않았다. 뭘 하겠다는 것인지, 어떤 재무적·비재무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IT부서가 기획안을 다시 만들었다. 얇은 분량의 새 기획안에는 현재 상황과 미래목표에 대한 간단한 그래프가 포함됐다. 특히 200개에 달하는 지급결제시스템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나라별, 해외지역별로 제각각인 비즈니스 체계를 어떻게 통폐합할 것인지를 현업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이사회는 곧바로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골치아픈 비즈니스 이슈에 대한 해결책이 나온 만큼 전사적인 관심과 지원도 얻었다.

EA는 IT의 복잡성을 없애고, IT부서가 비즈니스 요구에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과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가트너는 목표모델로 발전하기 위해 현재 수준과의 격차(gap)을 끊임없이 줄여 나가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자면 EA는 현재 모습(as-is) 중심의 단순한 설계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글로벌화, 규제 강화 등으로 비즈니스 환경은 더 복잡해지고, 경쟁도 더 치열해지고 있다. IT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EA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EA가 도입된 지도 10년이 다 돼 간다. EA 관련 법률도 있다. 하지만 EA로 큰 성과를 봤다는 기업이나 기관은 찾기 힘들다. IT아키텍처로 돈을 번다니, 참 뜬금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이제 돈 되는 EA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박서기 CIO BIZ+ 편집장 겸 교육센터장 sk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