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보기] 한국 IT정책 20년-천 달러 시대에서 만 달러 시대로
정홍식 지음·전자신문 펴냄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수필에서 ‘사람들이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때문에 글을 쓴다’고 했다. 이 가운데 ‘사물·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한 사실을 발견하며 후대를 위해 이것들을 모아두려는 욕망’을 역사적 충동에 따른 글쓰기로 풀어냈다.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는 것, 즉 ‘기록’이다.
정홍식 옛 정보통신부 차관(1998년 3∼5월)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자신도 이것저것을 제대로 기록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의 산물이 2007년 1월에 내놓은 ‘한국 IT정책 20년’이다. 1979년부터 청와대 경제비서관실과 정보통신부에서 일하며 축적한 한국 정보통신 정책 관련 ‘기록’이어서 무게도 상당하다.
정 전 차관의 기록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특히 쪽을 넘기다가 만난 여러 낯익은 이름에 시선을 붙들렸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초 김재익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대외비로 ‘(기업에) 일감 찾아주기 운동’을 했는데, 실무책임자 명단에 정근모 한국전력기술 사장이 포함됐다. 정 사장은 1955년 경기고를 중퇴한 뒤 서울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그는 제12, 15대 과학기술처 장관을 맡는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또 “경기고에 입학할 때 1년 선배가 신문에까지 난 영재라기에 누군가 궁금했는데, 그게 정근모 씨였다”던 오명 옛 과학기술부총리는 ‘한국 IT정책 20년’의 처음과 끝을 관통했다. 1987년 ‘전전자교환기(TDX)-10’ 개발단장으로 나선 박항구 박사, 1989년 국가 전산망조정실무위원회에서 일한 김창곤 체신부 정보통신과장과 이만기 과학기술처 정보산업기술담당관, 류중익·석호익·설정선·임차식 서기관에게도 시선이 갔다. 1995년 정보통신산업 육성대책 작업팀에 있었던 류필계·김원식·신용섭·박정렬 정보통신부 과장과 재정경제원에서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기획단에 파견됐던 노준형 서기관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렀음은 물론이다.
1980년부터 1998년까지 20년간 IT 정책을 수립·집행한 그들이 무엇을 왜 했는지, 잘하고 잘못한 게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은 기자와 여러 독자의 몫이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