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구에서 미래학이 탄생했을 때, 이 신학문의 흐름에 동참했던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미래를 족집게처럼 맞추는 기술이 탄생할 것으로 믿었다. 과학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미래학이 발전할수록 이런 믿음은 약해졌고, 미래를 발견의 영역이 아닌 창조의 영역으로 인식하게 됐다. 하나의 진리가 아닌 복수(複數)의 진리를 추구하게 된 미래학은 포스트모던시대를 앞서갔다.
그러나 미래를 미리 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꺼지지 않았다. 과학기술과 통계학이 복잡하게 발달하면서 인류는 조만간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신기술은 끊임없이 나타났고, 이를 통해 주식시세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 결과도 예측한다. 어쩌면 21세기는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세계를 끌고 가려는 세력과 그에 맞서는 세력의 싸움으로 점철될지도 모른다.
물리학·수학·컴퓨터·통계학 분야를 다루는 미국 코넬대학의 온라인 저널(arXiv.org)에 최근 재미있는 논문이 하나 발표됐다. 이 논문의 저자, 스위스연방기술연구소의 더크 헬빙은 10억유로(한화 1조4700억원)만 있으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엄청난 금액이긴 하지만, 우주의 탄생 비밀을 캐낸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에 94억유로가 들어갔으니 미래를 알 수 있는데 투자하는 액수 치고는 그리 많다고 볼 수만은 없겠다.
문제는 내용인데, 저자가 주장하는 시스템은 8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 학제간 물리학 연구, 개방 교육 시스템, 복잡계 과학, 지속가능성 연구, 경제학, 교통공학 그리고 컴퓨터 사회과학. 이 8가지 분야가 경계의 구분 없이 섞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환경재앙, 에너지자원 고갈, 핵전쟁 등 인간이 미래에 마주할 위협요소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골자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자면 몇 가지 생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문제를 풀려는 노력보다 미래의 문제를 예상하려는 노력을, 경제적 접근보다 사회-환경적 접근을, 위험요인에 대한 즉흥적인 대응보다 실시간으로 위험요소를 관리하는 대응을,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는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헬빙이 주장하는 생각의 전환은 생각해볼 만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미래학계에선 이 같은 예측의 과학을 믿지 않는다.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는 슈퍼컴퓨터가 없어서 몰랐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뒤늦게 영국 여왕에게 보고한 미국 경제위기의 원인은 요약하자면, “알았어도 말하지 못한,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환경 탓”이었다고 한다. 이런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위기가 언제쯤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