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들 점지’를 위해 부부가 나란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익숙했다. 서양에서도 그랬을지 모른다. 적어도 1905년 발표된 미국 여성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의 연구 이전에는.
스티븐스는 그 해 풍뎅이 관찰을 통해 성이 특정 염색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당시 유전학계에는 성의 결정이 유전에 의해서인지 배아의 성장 환경에 의해서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그녀의 Y염색체 발견은 당시 극단적인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티븐스의 연구에 따르면 성은 남성을 결정하는 Y염색체의 발현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남녀 간 선천적인 지적 능력이 생물학적으로 부정된 때문이다.
그 시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식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윈은 1871년 출간한 ‘인간의 유전(Human Descent)’에서 “남녀 간 지적 능력 차이는 무슨 일을 하건, 일이 어떤 것이건, 그 일이 심오한 사유나 이성, 상상력을 요하건 아니면 단순 감각과 수작업을 필요로 하건 간에 결국 여자가 이를 수 없는 지점에 남자가 도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스티븐스 이후 생물학은 다윈의 주장을 분쇄한다. Y염색체가 실은 X염색체에서 퇴화된 유전자에 불과하며, 남성의 Y염색체는 성별만을 결정하지만 X염색체는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규명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주의 유전학자 제니 그레이브스에 따르면 Y염색체는 사실 X염색체의 잔해에 지나지 않는 ‘젖은 넝마조각’ 같은 염색체이며 X염색체는 ‘지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하다(올리비에 비네이, ‘X 염색체의 복수’)고 까지 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객관적인 생물학 연구로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킨 스티븐스에게 미소를 던지지 않았다. 스티븐스는 10년 동안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연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또 10년이 넘는 오랜 공부를 하면서 성과를 내고 그 후 그토록 고대하던 연구교수 자리를 얻었으나, 취임 직전인 1912년 5월 4일 유방암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향년 51세였다. 지난 1994년 그녀는 여성 명예의 전당에 추존됐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