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2.0 시대를 연다

장원기 삼성전자 사장(LCD사업부장)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기술적 지향점은 시청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실감 영상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60인치 이상 대형 패널과 초선명(UD:Ultra Definition) 화질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널 대형화는 LCD 업계의 큰 목표다. 반도체 기업들이 미세화를 통해 단일 웨이퍼당 칩 생산량을 높이는 데 치중해 왔다면 디스플레이 업계는 응용 분야를 확대하고 소비자들이 보는 화면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매출 확대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현재 LCD TV의 주력 크기가 30인치대에서 40인치대로만 이동할 경우 수요는 같다고 가정해도 8세대 라인은 두 배 이상 필요하게 된다. 8세대 라인에서 32인치는 18장, 37인치는 10장을 하나의 원판에서 생산할 수 있지만 47인치는 6장 생산에 불과하다. 비슷한 규모의 30인치 생산량을 40인치로 맞추려면 두 배 이상의 8세대 라인이 필요한 셈이다.

 소비자들이 큰 화면을 보게 하기 위해서는 화질 개선이 필수적이다. 해상도가 높을 수록 큰 화면을 관람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화면을 보여주겠다는 방송사·TV 업체들의 노력은 SD(720×480)에서 HD(1024×768), 풀HD(1920×1080)로 방송 규격을 진화시켰다. 가로 1920개와 세로 1080개의 화소로 구성되는 풀HD 패널은 TV 시장에서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얼마 안 돼 시장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1분기 TV 시장에서 34.8% 점유율을 기록한 풀HD 제품은 올 3분기에 50%를 돌파하며 바야흐로 HD를 제쳤다. 이와 동시에 풀HD 이후 초선명 화질을 구현하기 위한 디스플레이 업체들 간의 기술 개발 경쟁도 불을 뿜고 있다. 초선명 디스플레이가 60인치 이상 대형 TV 수요를 견인할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선명 디스플레이, 땀구멍까지 선명하게=일반적으로 초선명(UD) 디스플레이는 풀HD보다 4배 혹은 16배까지 높은 해상도를 가진 초선명 영상기기를 의미한다. 해상도에 따라 QFHD(3840×2160), 디지털 시네마(4096×2160), 슈퍼 하이비전(7680×4320)으로 구분된다. 기존 풀HD 제품과 해상도를 비교하면 QFHD와 디지털시네마가 4배, 슈퍼 하이비전은 16배가 높아 거의 실사에 가까운 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대면적 화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업계에서는 초선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하는지에 따라 미래 시장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해상도는 그대로인 채 화면만 커지면 개별 화소가 부각되면서 화면 품질이 떨어져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50인치급 이상 대형 TV에서 부드러운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초선명 디스플레이 기술이 필수인 셈이다.

 최환영 삼성전자 상무(LCD연구소)는 “실감 디스플레이를 위해 명암비 1만 대 1 이상 및 240㎐ 고속 패널 기술, 초선명 패널이 필요하다”며 “조만간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화소의 입자를 느끼지 않고 TV를 시청하기 위한 ‘최적시거리’는 HDTV의 경우 TV 세로 길이의 약 세 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우 인간의 눈에서 TV 양끝 모서리까지의 각도는 30도 안팎에 불과하다. 30도 바깥에 있는 사물이 움직이거나 주의를 흩뜨릴 수 있는 동작을 하게 되면 시청 몰입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디지털시네마의 최적 시거리는 디스플레이 세로 길이의 1.5배로 인간 눈에서의 각도는 55도에 달한다. 슈퍼 하이비전은 TV 높이의 불과 0.75배 뒤에서 시청하면 되며, 이 경우 시야각은 100도 안팎인 것으로 조사됐다. 시청 도중 주변 사물에 의해 몰입도가 저하될 가능성이 그만큼 적은 셈이다.

 ◇일본, 15년 전부터 초선명 디스플레이 개발=초선명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에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TV 업체가 아닌 방송사였다. 일본 NHK는 2015년 시험방송 후 2025년께 슈퍼 하이비전 본 방송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일본 아이치현 국제박람회에서 최초 시연을 한 이후 매년 5월 개최되는 ‘NHK 오픈 하우스’에서도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시연하고 있다. 촬영·압축·전송·디스플레이 등으로 분야를 나눠 각 영역에서의 초선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 관련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국가별 특허 출원 동향에서도 초선명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일본의 선제 공격이 시작됐다는 점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슈퍼 하이비전과 관련한 특허 중 36%를 점유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미국(30%)이 근소하게 추격하고 있으며, 디스플레이 1위를 자부하는 한국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슈퍼 하이비전 세부 기술에 해당하는 촬영·압축·전송·디스플레이 분야 중 디스플레이 기기와 관련한 특허가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게 위안이 됐다.

 ◇삼성·LG, 전략=비록 초선명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 개발 및 표준화는 일본 방송사와 세트 업체들이 첫발을 뗐지만 최근 국내 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특히 디스플레이 패널의 경우 국내 업체가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 업계 최초로 82인치 크기의 3840×2160 해상도 120㎐ 패널 개발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선명한 화질과 함께 고속 처리가 가능해 영상 번짐 현상을 대폭 개선했다. 특히 발광다이오드(LED)를 광원으로 채택, 기존 냉음극형광램프(CCFL) 백라이트보다 색 재현성도 크게 향상됐다. 이 제품은 2008년 세계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 전시회에 선보이면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