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갈길 먼 `과학적 단가 산정`

 이달부터 공공기관은 소프트웨어(SW)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능점수(function point)에 기반한 단가산정 방식을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지만 아직 상당수의 공공기관은 이같은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IO BIZ+가 지난 5월 2일부터 4일까지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입찰 요청 중 10건을 무작위로 추출해 분석한 결과 기능점수를 적용한 제안요청서(RFP)는 3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능점수 방식을 도입하지 않은 기관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새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준비한 RFP를 그대로 공고했다.

정부가 SW산업 육성을 위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기능점수 제도가 이처럼 홀대받는 것은 이 제도에 대한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당수 공공기관의 IT책임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기능점수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전문인력 육성이 시급해 보인다.

 ◇아직 의무화 사실 모르는 곳 많아=지식경제부는 올 2월 개정·고시한 ‘SW사업 관리감독에 관한 일반기준 2010-52호’를 통해, 투입인력의 수와 기간에 의한 SW 개발비 산정방법(M/M, man-month)은 2010년 5월1일까지만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까지는 M/M 방식과 기능점수 방식 중 하나를 골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M/M 방식의 사용이 제한됨에 따라 이제 기능점수 방식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5월에 들어서면서 발주를 준비하는 여러 기관에서 문의가 오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은 안내 시점이기 때문에 지식경제부와 조달청이 모니터링을 통해 기능점수 적용을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패널티나 제한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부의 제도를 따를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의 특성 때문에 곧 전 기관으로 기능점수 적용이 확산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나라장터에 게재된 RFP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기능점수 적용이 의무화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관이 많았다. 그 동안 정부기관은 IT예산을 산정할 때 기획재정부에 기능점수가 적용된 예산안을 제출해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안이었다. 이제부터는 예산안 작성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발주 시 SW 단가 산정이나 신규 서비스관리(SM) 부분에도 기능점수를 적용해야 한다.

비록 공공기관에만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기능점수의 적용이 의무화됐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정부주도의 시범·확산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공공기관에서 먼저 시작하지만 이 방식을 도입하는 기관이 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민간 기업들도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공공기관이 M/M 방식을 기능점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데다, 현장에는 관련 전문가도 드물다는 점이다. 당장 공공기관들이 기능점수 방식을 제대로 적용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고객사가 적극적 도입 의지 가져야=국내에서 기능점수 단가산정 방식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예산 관행을 고려했을 때 현장에서 기능점수를 기반으로 제반 프로세스를 다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IT 프로젝트가 연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예산 역시 매년 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점수가 적용된 사업이 진행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기능점수를 통해 사전에 제대로 된 예산을 산정하려면 적어도 3∼4개월이 걸리는데 예산은 매년 가을에 책정되고, 이에 따라 사업의 사전 분석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발주처인 공공기관 IT책임자들이 기능점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현재 기능점수는 주로 RFP를 받은 IT서비스 업체가 산정해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기능점수를 쉽게 계산할 수 있는 템플릿을 가지고도 산정에 애를 먹고 있다. 발주자의 경우 막상 프로젝트가 닥치면 기능점수를 계산할 시간적 여유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주자는 애초 RFP 단계에서 기능점수에 기반한 프로젝트 규모 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자만 어설프게 기능점수를 적용해 제안서를 제출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능점수에 기반한 ‘객관적인’ 프로젝트 비용 산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겉모습만 기능점수일 뿐 사실상 M/M 방식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한정된 정보화 예산으로 인해 아무리 기능점수를 통해 사업 예산을 산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비교적 정확한 기능점수 방식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M/M 방식과 마찬가지로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또다시 ‘가격 깎기’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서주형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공학기술확산팀장은 “IT서비스 사업은 품질, 납기, 비용의 3가지 요소가 핵심인데 그동안은 품질 향상보다는 납기 준수와 비용 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품질을 중요시하지 않고 저가 수주에만 집중하다보면 IT산업 전반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엔 해외 진출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기능점수 활용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공공기관들이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고, 기능점수에 해박한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이 제도의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발주사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도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