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우리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오는 컨설턴트도 있더라고요.” 최근 A 대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는 B 컨설팅 업체를 비판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얼마 후 기자는 B 컨설팅 업체의 한 임원으로부터 A 대기업에서 겪은 곤혹스러운 경험을 우연하게 들었다.
B사가 A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였다. A사 임직원들로부터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B사 임원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면서 “요즘은 고객사가 주목할 만한 독특한 아이디어를 컨설팅사가 내놓지 못하면 민망할 정도로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한 A사는 이제 더 이상 컨설팅 업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또 다른 대기업의 임원이 한 얘기다. “유명하다는 컨설팅 회사와 10명의 컨설턴트를 쓰기로 계약을 했는데, 그 중 한 명만 에이스 급이고, 다른 한 명은 그를 돕는 역할, 나머지 8명은 내내 열심히 받아 적으며 무언가 배우러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컨설턴트 1명당 매달 수 천만원씩 비용을 지불했는데, 정말 답답했습니다.”
이 회사도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더니 이제는 웬만한 일로는 컨설팅 프로젝트를 발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컨설팅 업체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컨설팅 업체 임원들 스스로도 컨설턴트들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자주 하소연한다. 사실 경기침체까지 맞물려 지난해 국내 컨설팅 업계에는 심한 한파가 몰아쳤다. 모 글로벌 컨설팅 기업은 ‘해체’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등 컨설팅 업계에서 인력 이동이 눈에 띄게 빈번했다. 굴지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 중에는 주력으로 삼았던 프로세스 컨설팅 부문의 타격이 크자 상대적으로 저부가가치 영역인 IT 개발 관련 사업을 강화하는 사례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컨설턴트의 통찰력을 얻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해당 컨설팅 업체가 전에 수행했던 유사 프로젝트의 경험을 배우는 데 초점을 맞춰 컨설팅을 진행하는 대기업도 적지 않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공급망관리(SCM)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른 업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하거나 그 회사의 리더를 초청해 자사의 고민을 해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컨설턴트 출신의 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이런 현상을 두고 “대한민국 컨설팅 시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단언한다.
컨설팅 산업이 정말 위기에 봉착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정 회사만의 이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컨설팅 회사들이 과거에 비해 똑똑해진 고객사를 버거워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쟁사보다 더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컨설팅 회사라면 이런 상황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역설적이지만 우리 컨설팅 업계의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