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관심사가 건강으로 간다.
예전에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패기로 주어진 일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집중했고 그 탓에 건강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건강에 대한 자신감으로 건강을 돌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주어진 일을 성공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사명감은 여전하지만 동시에 건강에도 관심이 생겼다. 이젠 자신감보다는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연의 순리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생겨, 괜한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지는 않지만 건강을 돌보고자 하는 의지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일을 위해 계획을 세우듯 건강을 위해서도 계획을 세운다. 근력운동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걷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한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보니 관리를 하지 않을 때보다 일의 능률이 더 높아짐을 느낀다. 긴장과 이완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더해져 새로운 도전과 변화에도 흥미를 느낀다.
건강이 주는 중요한 교훈은 건강을 잃기 전에 미리 점검하고 예방하며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재난을 피할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격언의 의미가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건강 지키기인지도 모르겠다.
기업도 그렇다. 위대한 비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기본을 점검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경영의 진리다. 기업의 건강은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오늘의 문화가 말해주는 것이다.
기업의 건강도 혹은 건전성은 다양한 지표로 측정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 활동의 성과에 대한 사후평가를 통해서도 측정할 수 있지만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기업의 인프라 진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업의 인프라 중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바로 정보시스템이다. 이것은 마치 인체의 혈관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잘 만들어진 정보시스템은 기업의 활동을 미시적이면서 동시에 거시적으로도 들여다보며 옥석 가리기를 할 수 있게 한다. 기업이 정보시스템을 위한 크고 작은 투자를 거듭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 투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변화에 대처하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비즈니스처럼 유행을 따라가는 일에 여전히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유감스럽다. 그리고 안타깝다.
인체의 건강이 맑은 혈액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그 건강을 측정하기 위해 주기적인 사전 점검을 하듯 정보시스템 역시 건강을 돌보듯 관리하면 어떨까. 이를 위해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또 하나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자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확인하며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사전에 문제를 예측하자는 것이다.
사실 이 제안은 지난 20여 년간 고객을 만날 때마다 쉼 없이 해 왔다. 이 제안에 대한 반응은 고객마다 다른데, 흥미로운 것은 최고정보책임자(CIO)는 반기는 반면에 실제 정보시스템의 운영을 맡고 있는 실무진에서는 저항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작은 문제를 미리 발견해 효율과 효과를 높이려는 제안을 자신들의 업무 과오를 노출하려는 것으로 오해해 저항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감은 상대적으로 대한민국 기업에서 더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아무리 잘 짜인 정보 전략도 성공할 수 없게 하는 암과 같은 병적 원인이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전 진단과 예방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기대보다 큰 효과를 주는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마치 인체의 건강 관리처럼 말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최고의 처방을 예방에 두지 않았던가. 그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남은 것은 실천하는 일이다.
그 실천을 위한 첫걸음은 바로 각각의 기업에서 정보시스템을 총괄하는 CIO에게 달려 있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수는 있어도 사전 진단과 예방의 중요성은 CIO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관건은 CIO가 효과적인 조직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실무진과 이에 대한 상호 이해를 넓히고 공감을 도출해 현장에서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실무자들이 거부감 없이 사전 진단과 예방이라는 프로세스에 책임의식을 갖고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승억 데이타크레프트코리아 대표이사 echoi@datacraft-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