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후언(先行後言). 최경환 장관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현 내각에서 일 잘하는 몇 안 되는 장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공직자-언론인-정치인-공직자로 이어지는 행로가 보여주듯 평탄하지 않았지만, 고집으로 뚫어 온 ‘자기 길’을 그는 간다.
몇 번의 인생 굴곡마다에서 최 장관은 ‘결심’이란 단어에 다져졌다. 그래서 돌파력이 강하다. 정치인 장관에게는 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부하 직원에게 인기가 좋은’이다. 그러나 그는 부하 직원을 괴롭힌다. 일로써 괴롭힌다. 정책·기획 부처로 확고히 자리를 잡기 위한 지경부의 싸움은 그래서 치열하다.
최 장관은 취임 8개월을 맞으며, 잠시도 쉴 틈 없이 산업과 만난다. 스스로 “오는 전화도 비서에게 맡길 때가 많다”고 할 정도다. ‘가만히 있다가 가도 될’ 자리에서, 그것도 ‘돌아갈 국회의원이라는 직이 있는’ 자리에서 그는 신명나게 일하는 장관이다.
◆일시:2010년 5월 6일 오후 3시
◆장소:과천정부종합청사 지경부 장관 집무실
◆대담:홍승모 전자담당
“숨가쁘게 7개월을 보냈다. IT산업은 우리의 주력산업이자 미래로서 역할이 중요하다. 또 앞으로 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더 발전해야 한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IT산업이 타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기반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도 내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불거진 유럽발 금융위기에도 우리 경제가 탄탄하고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 장관은 취임 7개월여간 UAE 원전 수출, 세계 9위 무역강국 진입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이끌어 냈다. 이에 대해 최 장관은 “운이 많이 따랐다”면서도 “이러한 성과는 경제가 활력을 찾고 새로운 기회를 맞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통령의 탁월한 비즈니스 외교와 함께 UAE와 전략적 산업협력 기반을 다짐으로써 최종 계약에 힘을 보탰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 원전 5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민간이 지경부 연구개발(R&D)의 큰 틀을 주도하도록 R&D 전략기획단을 신설한 것도 최 장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도를 공무원이 따라갈 수 없다는 한계를 간파한 것이다. 미래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데 민간의 뛰어난 두뇌를 활용함으로써 현실과 연계된 국가 R&D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7개월간 정말 바쁘게 뛰었고 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앞으로 역점을 둘 곳은 어떤 분야인가.
▲정말 숨가쁘게 7개월이 지났다. 부품소재 경쟁력 제고 대책, 전기차 활성화 방안, 항공산업발전 기본계획, SW강국 도약전략, 지식경제 R&D 혁신전략 그리고 중견기업 육성전략까지 많은 정책을 발표했다. 이제 이렇게 발표한 정책들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점검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아울러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없애는 데 주력하겠다. 여기에 필요한 게 ‘산업융합촉진법’ 제정이다. 그간 낡은 법으로 인해 산업 간 융합은 물론이고 기술이 사장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제 융합촉진법 제정으로 규제로 인해 만들어진 기술과 아이디어가 중도폐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융합 문제가 나와서 그런데,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정부나 국내 기업의 대처가 미흡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간 국내 기업이 고기능폰 위주의 사업전략을 펼치다보니 SW 경쟁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폰 등 스마트폰 등에 대한 대처가 늦었다. 정부도 위피(WIPI) 탑재 의무화와 같은 규제 위주의 정책을 오래 지속하면서 스마트폰 보급을 지연시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도 HW를 발판으로 SW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도 모바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노력 중이다. 무선인터넷 이용 활성화를 위해 요금 부담을 완화하고 모바일 신기술과 서비스 출현을 촉진하도록 규제를 개선하고 있다. 또 월드베트스소프트웨어(WBS) 프로젝트 추진 등을 통해 차세대 핵심기술 개발에 지원을 집중할 계획이다.
-IT산업 진흥 주무부처로서 향후 IT산업 정책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IT산업은 분명 미래 먹을거리다. 지난 2월에 SW강국 도약 전략을 발표했고 3월에는 모바일 산업발전전략, 4월에는 3D산업 발전전략을 내놨다. IT산업은 창의성이 핵심이다. 그래야 SW 산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콘텐츠도 많이 생겨난다. WBS 프로젝트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창의적인 인재를 집중 양성하고 새로운 무대를 열어줌으로써 산업의 핵심을 키우자는 것이다. 앞으로 IT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과도한 규제는 찾아내 개선하는 것도 과제다. 이를 위해 자동차·조선 등 전통산업과 IT의 융합을 확산하기 위한 전략도 내놓겠다. 산업융합촉진법 제정 역시 IT와 전통산업이 융합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 과거에 육성하지 못한 시스템 반도체, SW, 방송장비 네트워크 산업 등 취약 분야를 중점 점검해 진흥 정책을 추진하겠다.
-IT 총괄부처 신설에 대한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IT만을 전담하는 부처를 신설하는 것은 IT와 타 산업 간 융합이 본격화되는 세계 산업발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다. G7, 호주, 대만 등 IT인프라 구축이 완료된 국가는 정통부가 없다.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일부 국가만 정통부를 운영한다. IT산업은 자유와 창의, 개방과 경쟁 등 자유로운 사업 환경에서 성장해야 한다. 미국은 규제가 없는 기업환경 덕에 애플의 아이폰 같은 융·복합 비즈니스 모델이 자유롭게 생기는 것이다. 또 IT총괄 부처를 만들면 규제를 강화하게 마련이다. IT가 모든 산업의 인프라가 된 상황에서 IT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오히려 규제를 풀어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IT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현 정권 들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한가.
▲IT총괄 부처가 없어서 우리나라 IT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오해다. 우리나라 IT경쟁력 하락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09년도 IT경쟁력 지수 하락은 정통부가 있던 시절인 2005∼2006년 자료에 기반한 것이다. 오히려 최근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IT산업은 값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제로 세계 IT시장이 작년에 4.6% 역성장했지만 우리 IT산업은 5.3% 성장했다. 또 IT산업 무역수지도 590억달러의 흑자를 달성했다.
-중국의 부상이 놀랍다. 또 우리 수출의존이 중국에 너무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국 수출의존도는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중국은 급성장 중인 시장이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중국은 과감한 내수 확대 정책과 국민소득 증가에 힘입어 소비재 판매가 15% 이상 증가했다. 서부 대개발, 중부굴기와 같은 대규모 지역개발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프로젝트다. 중국은 이제 하나의 국가로 접근하는 전략을 펴서는 어렵다. 성과 시 단위가 포함된 권역별 전략을 짜야 한다. 또 한중 FTA도 근본적인 국가전략 차원에서 관계 부처와 함께 면밀히 검토하겠다.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대내외 비판이 많다. 개선방향은 있나.
▲외자유치 실적도 부진하고 개발도 지지부진한 게 현실이다. 정부는 올해를 경제자유구역이 재탄생하는 원년으로 만들고자 한다. 또 연내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겠다. 아울러 중장기 발전 청사진을 내놓고 6개 자유구역이 지역특성과 비교우위에 따라 독자적이고 차별적으로 발전하도록 유도하겠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어떻게 진행되나.
▲현재 전력산업구조는 지난 2004년 구조개편이 중단되면서 과도기적이고 기형적 구조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KDI 주관하에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5월 말 용역결과가 나오면 이를 통해 공론화 절차를 거쳐 정부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끝으로 올해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럽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있지만 올해 5% 안팎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경제 예측기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업의 수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리=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