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출간된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The Lost of Symbol)’.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에 출간된 이 책은 아마존 ‘킨들’ 스토어에서만 1주일 만에 10만권 이상 내려받기가 이뤄졌다.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 동시에 미국 내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10만번 넘게 불법으로 공유됐다. 이는 국내 전자책 시장에 커다란 고민을 안겨줬다. 종이책과 전자책 동시 출간 문제와 콘텐츠 불법 공유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간 전자책 콘텐츠를 찾기 힘들다. 유통사가 초반 시선끌기를 목적으로 몇몇 작가의 콘텐츠를 공급하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출간된 지 5년 이상된 콘텐츠다. 로맨스, 무협 등 분야도 한정됐다. 출판업계가 전자책 콘텐츠 유통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출판사는 아직도 신간 콘텐츠 유통이 과연 출판사에 시장을 열어줄 수 있을지 걱정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자책 출판과 관련해 출판업계 대변자 격인 한국출판콘텐츠(KPC)는 12일부터 전자책 콘텐츠 3000권을 우선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3000권 중 신간은 극히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렬 KPC 대표는 “북토피아 사태로 인해 몇 년간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공급하지 않은 상태라서 현재 나와 있는 콘텐츠는 독자들이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KPC의 콘텐츠는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이중으로 탑재했다. 어도비와 국내 업체인 마크애니의 DRM이다. 제작자는 비용 부담이, 이용자는 불편이 뒤따를 전망이다. 신 대표는 “콘텐츠의 불법 유출을 꼭 차단해야 하며, 보안과 정산 문제가 확실한 DRM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간이 풀린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해외 도서 전자책 서비스 여부다. 앞서 말한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은 아직 국내에서 전자책으로 서비스되지 않는다. 다른 해외 유명 서적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종이책 중 해외 도서 비중은 30∼35% 수준이다. 전자책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업계는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이하 2차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차 저작권이란 출판 이후 저작물의 재사용 권리를 말한다. 전자책 콘텐츠는 2차 저작물로 분류된다. 이상수 북큐브네트웍스 과장은 “출판사들이 해외 인기 도서를 국내에서 출판하려고 과도한 선인세를 지급하는 등 극심한 경쟁을 벌였다”며 “전자책 역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선 인세로만 8000만엔(약 10억원)이 지불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업계는 2차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수 과장은 “읽을 만한 전자책 콘텐츠가 없다는 불만이 나오는 현 상황을 바꾸려면 신간 콘텐츠 유통과 더불어 해외 도서도 충분히 공급돼야 한다”며 “경쟁이 심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최소한의 2차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준다면 양질의 콘텐츠를 좀 더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화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에 ‘전자출판 콘텐츠 공급 표준계약서’ 마련 계획을 포함했지만 2차 저작권 계약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를 뺐다. 문화부 관계자는 “아직 2차 저작권 문제는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계 이기주의와 정부의 헛발질이 이어질수록 전자책 시장 활성화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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