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문 이중게재 논란 원천봉쇄

서울대가 논문 이중게재 논란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연구윤리지침을 만든다.

서울대는 최근 교수들이 동일한 논문을 이중으로 게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고 총장 후보교수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10일 서울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들의 논문표절, 이중게재 등 문제를 조사하는 기구인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새로운 연구 윤리기준을 만들어 논문 이중게재 논란을 애초부터 근절시킨다는 계획이다.

위원회는 윤리지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인문대학은 자체 연구윤리지침을 준비 중이다.

서울대는 이미 황우석 교수 사태를 겪으면서 2008년 연구윤리지침을 만들었지만 지침의 내용이 이공계 연구에 맞춰져 있어 인문ㆍ사회 계열 논문에 관한 새로운 규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연구진실성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새로 만들어지는 지침에는 인문ㆍ사회 계열의 특성을 반영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내용이 담길까. 논란이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학술지에 이미 등재된 논문을 교내 학술지나 학술대회 논문집, 화갑 기념 논문집에 다시 올리는 경우다. 문제가 된 교수들은 "어차피 교내 학술지에 실리더라도 연구성과로 평가되지도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중게재는 맞지만 이중수혜는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주장인데, 새로 만들어지는 지침에선 문제가 되는 학술지의 범위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정식 학술지로 등재된 교내 잡지에 똑같은 논문을 게재하는 경우엔 당연히 문제"라면서 "정식 학술지가 아닌 경우 등재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문 심사과정이 있었는지 등이 이중게재를 가르는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엄격한 논문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는 화갑 기념 논문집은 이중게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교내 학술지, 학술대회 논문집의 경우 엄밀한 심사과정을 거치는 것들에 논문이 실리게 되면 이중게재 대상이 되게 된다.

국문과 영문으로 두 번 작성한 논문의 이중게재 기준도 명확해질 전망이다. 이공계와 달리 인문ㆍ사회계열 논문은 한국 특유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외국 학술지에 바로 실리기보다는 과거의 좋은 논문을 번역해 싣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윤리적 문제가 크지 않다면 해외 독자를 넓히는 차원에서 이중게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자체 기준 마련을 준비 중인 변창구 서울대 인문대 학장은 "한국에 관한 연구를 해외로 알릴 수 있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사와 관련된 훌륭한 논문은 이미 국내 학술지에 등재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만 강조하다 보면 해외에 우리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 학술지에 등재하면서 국내 논문집에 이미 실렸다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선 윤리적 판단이 엇갈린다. 위원회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이미 한국에서 등재됐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맞지만 그만큼 해외 논문집에 실릴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독자를 넓힌다는 측면도 있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학계에서는 이중게재에 관한 논의가 분분한 상태다. 조건부로 이중게재를 인정하자는 의견과 원칙적으로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조건부 이중게재 허용론을 주장하는 쪽에선 해외 독자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인문ㆍ사회 계열 논문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선 연구 논문이 새로운 저작물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현아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국내와 국외 독자들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면 중복 게재가 가능할 것"이라면서 "단 업적은 한 번만 인정하고 중복 게재 여부를 확실히 표기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인재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는 "자신의 이전 저작물을 새로운 저작물처럼 표시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정직하지 못한 자세"라면서 "출처를 제대로 표시하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연구 업적으로 카운트하지 않더라도 독자에겐 마치 그것이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논문 사이에 `의미있는 학술적 차이`가 있어야 중복 게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의미있는 학술적 차이를 판단하는 주체는 해당 학문 분야의 전문가 집단뿐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가이드라인보다는 연구자들의 성숙된 연구 풍토나 양심도 무척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이재화 기자 / 이기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