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기업 현장을 가다 ◆
◆ 사례 1 = 지난해 하반기 STX팬오션의 사내 지식경영 포털 사이트에 아르헨티나 옥수수 작황이 좋아질 것이란 정보가 올라다. =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옥수수 생산량 2위 국가로 미국, 브라질과 함께 세계 옥수수 수출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옥수수 수출 대국이다. STX팬오션 측은 지식경영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아르헨티나 옥수수 작황 정보를 검증한 뒤 아르헨티나발(發) 옥수수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판단해 발 빠르게 옥수수를 실어 나를 벌크선(건화물 수송 선박)을 충분히 확보했다. 이후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옥수수 수출량이 크게 늘면서 미리 벌크선을 확보해 놓은 STX팬오션은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정욱 STX팬오션 전략기획본부 해외사업팀 부장(발표자)이 STX팬오션 임직원들과 함께 SAIMS(전사 경영혁신 시스템)로 선박 운항 현황을 보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사례 2 = 지난해 12월 STX그룹은 아프리카 가나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주택단지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이 같은 아프리카 대박 스토리는 2007년 STX팬오션 나이지리아 사무소가 지식경영 포털에 올린 보고서가 시발점이 됐다. 보고서에는 아프리카 건설 수요가 늘면서 중국에서 아프리카로 건축 기자재와 건설 장비를 실어 나르는 선박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부터 STX그룹 최고경영진은 아프리카 건설시장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확신해 아프리카 사업팀을 구성했다. 앞서 사업 기회를 내다본 이 같은 준비 작업이 결국 지난해 메가톤급 수주로 이어졌다.
선박 물동량이 기업 실적을 좌우하는 해운업에서 남들보다 앞서 원자재나 곡물 시황 정보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다. 남미나 호주 곡물 작황이나 유가 정보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운업체 실적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1966년 범양상선으로 출발한 STX팬오션은 하루 운항하는 선박만 450척에 달한다. 한 해 동안 정박하는 항구만 2000개다. 또 화물 수송을 위해 STX팬오션의 선박을 빌리는 화주(貨主)만 전 세계적으로 3만여 명에 달한다. 특히 벌크 화물 수송을 주력으로 하는 STX팬오션의 경우 컨테이너 주력 해운업체보다 노선 변경이 훨씬 많다. 정기선보다 부정기선이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450척에 달하는 선박의 운항노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절하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다. 운항노선 최적화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매년 수백억 원의 영업이익이 왔다 갔다 할 정도다.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하고 조합하는 능력이 절실한 이유다. 이와 관련해 STX팬오션은 정보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해답을 지식경영에서 찾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한 각종 운항정보와 노하우를 2007년 새롭게 개설한 지식경영 시스템(KMS)에 모두 담았다. 그렇게 탄생한 전사 경영혁신 시스템(SAIMSㆍSTX PanOcean Advanced & Integrated Management System)이 바로 STX팬오션의 정보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SAIMS는 크게 전략경영, 의사결정, 영업ㆍ운항, 재무관리, 인력개발 등 5개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역시 영업ㆍ운항 시스템이다. 이곳에는 STX팬오션이 거래하는 3만여 명에 달하는 화주의 데이터베이스(DB)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고객 이름을 넣으면 그동안 A고객과 거래에서 얼마만큼 매출을 올렸고, 어떤 화물을 옮겼고, 중간 브로커는 누구인지 등 영업상 필요한 모든 정보가 검색된다. 본부에서는 전사 경영혁신 시스템을 통해 450여 척에 달하는 선박에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시형 STX팬오션 경영기획팀장은 "전 세계 바다를 44개 수역으로 나눠 STX팬오션 소유 선박이 어디에 있는지 SAIMS를 통해 파악한다"며 "기상 조건은 물론 유가 정보, 항구별 체선(정박) 현황 등을 바다 위 선박에 수시로 통보해 최적의 상황에서 운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장이나 항해사들이 축적해 놓은 노하우도 지식경영 시스템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STX팬오션은 선박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계열사 STX마린센터(SMC)를 통해 선장이나 항해사들이 생산한 정보를 별도로 취합해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축적한 2000여 개 항구 정보에는 부두에 배를 댈 때 필요한 적정 거리에 대한 정보에서 국가별 세관 특징이나 에이전트 전화번호까지 없는 게 없다. 특정 항구에 처녀 취항하는 선박에 이 같은 정보보다 더 중요한 정보는 없다.
SAIMS에 축적된 고급 정보는 STX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도 공유하고 있다. 이상운 (주)STX 경영기획실 부장은 "STX팬오션이 취합한 시황이나 국가별 정보는 그룹 포털을 통해 모든 계열사가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STX팬오션에는 SDS(Strategic Decision System)로 불리는 시황 예측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34개 지ㆍ법인에서 근무하는 주재원 51명, 현지 채용인 250명이 매일 이곳에 올리는 살아 있는 정보는 의사결정과정에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국내 영업직원 200여 명도 매일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종 시황을 정리해 SDS에 올린다. STX그룹의 월례 통합 시황 회의는 바로 이 같은 밑바닥 정보를 토대로 이뤄진다.
■ 쉿!STX맨 0.3%에게만 허락된 `핫라인`
임원 200여 명 접속…고급 정보 공유
올해 3월 15일 출범한 STX그룹 지식경영 시스템(KMS)에는 핫라인(Hot Line) 코너라는 것이 있다.
STX그룹 전체 임직원 5만8000여 명 중 실장급 이상 임원진 200여 명만 접속할 수 있는 특별한 지식 교류 커뮤니티다.
STX그룹이 그동안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KMS와 별도로 그룹 통합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해 12월. 조선이나 해운업은 정보 싸움인데 임원들끼리 고급 정보를 빨리 공유할 기반이 없다는 것이 그동안 STX 경영진으로서는 고민이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도 핫라인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다는 전언이다.
STX그룹 지식경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운 (주)STX 경영기획실 부장은 "예전에는 임원진이 얻은 고급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사장되는 사례가 많았다"며 "지금은 임원진이 핫라인 코너를 통해 고급 정보를 올릴 수 있게 돼 임원들이 이 같은 고급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박봉권 기자 / 신헌철 기자 / 차윤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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