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무성이 11일 국가채무와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발표하자 일본 국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보다 일본의 재정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본의 누적 국가채무는 올해 3월 말 현재 882조9235억엔에 달해 1년 만에 무려 36조4265억엔(약 450조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GDP 대비 국채 비율은 무려 218.6%로 치솟아 미국(84.8%)이나 영국(68.7%)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그리스(101%)보다도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특히 올해도 경기부양용으로 44조엔 규모 국채 발행이 예고된 데다 경기 침체로 세수 수입이 크게 줄어들면서 내년 초에는 국채 잔액이 973조엔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조엔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렇다면 일본도 남유럽 국가들처럼 국가신용도 하락과 재정위기에 직면할 것인가.
일본 재무차관 출신인 시노하라 나오유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도 이달 초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해 "일본이 당장 재정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국채 판매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낮은 차입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온 일본이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수년 후에는 일본 국채시장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리 도시히로 도쿄대 교수(재정학)는 "인구 고령화와 저축률 감소로 개인이나 기업이 더 이상 국채 자금줄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며 "재정 상황이 이처럼 변했는데도 정치권의 인식은 안이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장기금리의 지표 격인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현재 1.3%대에 불과하지만 열악한 재정ㆍ세수 여건을 감안하면 국채 금리의 상승세 전환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일본 국채는 시중은행(37.2%) 보험회사(16.6%) 중앙은행(7.4%) 등이 60% 이상을 보유 중이다.
재정위기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도 소비세(현행 5%) 인상을 전제로 한 중장기 재정건전화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지난달 일본의 국채 신용등급(AA-)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에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초 일본의 신용등급(AA)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신용부도스왑(CDS)시장에서 일본 국채의 보증비용률은 5월 초 현재 0.76%대로 도요타 리콜 위기가 불거졌던 2월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 일본 거리에서는 국채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택시 탑승객들도 국채 광고를 보면서 이동하고 있다. 앞좌석 뒷부분 상품광고가 일본 재무부 국채 광고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2009년 일본 개인용 국채 판매는 1조3000억엔에 머물러 전년 대비 40% 수준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06년 개인용 국채 판매가 6조엔을 넘긴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정부 부채가 많아 재정수입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기도 버거워지자 이자 상환용 국채를 발행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 할 국채 이자비용은 10조2000억엔으로 전체 세수 가운데 26%나 된다.
개인투자자가 아닌 자국 기관투자가들도 일본 국채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 국채 최대 매입자이자 세계 1위 보유자산을 자랑하는 일본연기금은 연금 지급을 위해 지속적으로 국채 비중을 줄일 예정이다.
지속적인 일본 국채 수익률 악화가 기금 운용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도쿄 = 채수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