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만큼 급변하는 곳도 없다. 내가 1990년대 후반부터 경험한 신문업계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직원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거나 해고됐다. 방송업계라고 다르지 않다. 거대 신문사들의 방송 진출로 미디어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런 험악한 때, 착한 미디어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일까.
세계미래학연맹(WFSF)에서는 이른바 세상에 빛이 되는 ‘착한 미디어’를 찾아내고 연결해 이들이 전하는 희망의 목소리를 세계로 전파하려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희망의 이미지,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메시지, 아직은 작지만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 목소리를 전파하는 미디어를 탐색해보자는 것이다.
인터넷 미디어 ivoh.org를 보자. 이들이 귀 기울여 듣는 이야기는 기존의 거대 미디어 그룹이 보도하지 않았던 것, 보도하기를 주저했던 것, 혹은 무시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 중에 세상에 희망이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자는 태도는 마치 휴지통에서 특종의 단서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이런 미디어는 어떤가. 기발하면서도 세상에 유익을 주는 아이디어를 명사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고 격려해주는 테드(TED) 미디어. 선한 가치와 신기술이 결합된 최신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
지구적인 의식을 갖춘 세계 시민의 자질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코스모스(Kosmos) 저널도 착한 미디어다. 최근 이 저널에 글을 쓴 다큐 제작자 퍼낸다씨의 이야기를 보면 그렇다. 그는 직접 제작한 ‘빨간 물동이에 담긴 희망’이라는 다큐를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 마을의 농부들이 경험한 엄청난 기후변화의 위력과 이런 변화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담아냈다. 독특한 점은 마을 농부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스스로의 삶을 촬영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1993년 소말리아 내전을 취재하다 살해당한 로이터 통신의 댄 앨던 기자를 추모하면서 만든 크리에이티브 비전(creativevisions.org)도 주목할 만하다. 댄 앨던 기자의 어머니(저널리스트)와 여동생(다큐 제작자)이 2004년 시작한 이 미디어는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아티스트, 케나의 굶주린 아이들,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알리고 이들을 돕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연구단체 및 종합 미디어로 발돋움했다. 이곳은 예술과 미디어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저널리스트, 아티스트, 영화제작자, 시민운동가들로 결성돼 있다.
세상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때, 착한 미디어의 출현은 분명 의미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외국 사례에서 보듯 거대 미디어 그룹은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시민이, 학생이, 학자가, 엔지니어가 담당해야 한다. 아니 이들의 활약은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